오늘의 (6/23) 말씀 묵상 (역대상 29장11절, 1 Chronicles 29: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Yours, O LORD, is the greatness and the power and the glory and the majesty and the splendor,
for everything in heaven and earth is yours.
Yours, O LORD, is the kingdom; you are exalted as head over all.
다윗은 위대함, 능력, 영광, 승리, 존귀가 모두 하나님께 속했고,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그는 부귀가 주님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주권자로 고백하는 사람은 그분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오늘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또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지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대명제입니다. 하나님을 만유의
주재로 고백하며 그분을 자신의 주님으로 인정하십니까? 진심으로 하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인정할 때에야
우리는 그 분께 온전한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권자이십니다. 그 분은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마음으로
겸손히 드리는 예물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마다 그 분께 받을 것을 돌려 드리는 것임을
기억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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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2) 말씀 묵상 (역대상 22장16절, 1 Chronicles 22:16)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하니라.
in gold and silver, bronze and iron–craftsmen beyond number.
Now begin the work and the LORD be with you.
다윗은 자신이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과 인부들을 이미 다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아무 걱정하지 말고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라고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은 개인 차원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적인 차원의 과업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솔로몬을 도우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 일에 매진하라고 합니다.
성전 건축은 엄청난 국가사업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최고의 권한을 위임하며, 신하들에게는
충성을 다짐시켰습니다. 지도자가 죽기 전에 후계자에게 해야 할 일은 모든 권한을 위임해 주고 힘을 실어 주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다음 세대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견고하고 풍성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가장 크게 물려주어야 할 권한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 대에서 믿음이 끝나버린다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이루는데 차질이 생깁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최고의 유산을
준비하고 넘겨주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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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1) 말씀 묵상 (역대상 16장34절, 1 Chronicles 16:3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love endures forever.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인자아심이 영원하십니다. 그 분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심판의 운명에 처한 인간을
건져 내시고 구원하셔서 그 분의 백성으로 삼아 그 분의 이름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사람의 구원이
그 자신에게 달려 있다면 얼마나 불안하고 소망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구원을 이루시는 분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가 터져나오고 그 분의 인자하심에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에 따라 사랑도 했다가 심판도 했다가 하는 신이 아닙니다. 그 분은 영원히 변함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 자신을 희생해 구원을 이루신 분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분의 사랑에 힘입어 언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으로 인정한다면,
구원에 감사하며 그 분께 무엇이든 맡기고 내려놓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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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0) 말씀 묵상 (요한복음 4장14절, John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but whoever drinks the water I give him will never thirst.
Indeed, the water I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눈에 보이는 우물물은 먹어도 다시 목이 마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생의 물, 곧 생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야곱의 우물과 야곱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한 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름이 없는 완전하고도 영원한 해결책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이 생수는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심령에게 생수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만 하면, 영원히 갈하지 않는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감으로
구원의 기쁨과 은혜를 날마다 넘치도록 누리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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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9) 말씀 묵상 (요한복음 3장30절, John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침례(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를 신랑과 친구로 비유했습니다. 신랑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신부로
맞이합니다. 요한은 신랑의 들러리로, 신부를 신랑에게 무사히 인도하고 결혼 잔치를 주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침례(세례) 요한 자신은 ‘쇠하여야 하리라’고 선언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주연이고 자신은 조연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높임을 받으실 수 있도록 자신은
낮아져야 하며, 그렇게 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침례(세례) 요한처럼 주님만을 높이기 위해 우리 자신들은 철저히 낮아져야 합니다. 말은 쉽지는 행동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광야 40년을 통과할 때 완악하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변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모세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보았지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이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처럼 말을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기’ 때문이었습니다.
(민 20:10-13, 27:14: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는 절대로 그런 마음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참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가리워져야 하겠지만 잘한 것도 가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선을 행하시되 겸손히 주님을 높이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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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8) 말씀 묵상 (요한복음 3장16절, John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고 있는 이 구절을 마틴 루터는 복음서 전체를 축약한 ‘작은 복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이 구절은 구원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구원의 대상은 세상이며,
구원의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구원의 방법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이고, 구원의 도구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이며, 구원의 결과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복음이 복된 소식은 까닭은 심판 받아야 마땅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뜻과 의지를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이미 심판이 선고되었습니다. 복음의 정수를 알고 믿어야 분명한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효험이 좋은 약일지라도 믿고 복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복음은 믿고 영접하는 사람에게만 복된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복음으로 거듭난 우리들이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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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7) 말씀 묵상 (요한복음 1장14절, John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주님과 동행하는 특권을 누립니다. 말씀이 육신(성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에
믿는 자들은 그 분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은혜는 마르지 않는 충만한 은혜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은혜 위에 은혜’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전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 안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참된 진리 안에 인간의 만족이 있습니다.
이런 은혜와 진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칩니다. 하나님의 진리 안에 영혼의 참 만족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무미건조한 교리의 독백이 아니라 살아 계신 인격자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 분 안에서 은혜와 진리를
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있음을 믿는다면, 어둠 속에서도 내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으며
진리 가운데 바른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와 진리를 늘 충만히 누리도록 주님께 가까이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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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6) 말씀 묵상 (요한복음 1장12절, John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w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참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그 빛을 비추셨지만 세상은 그 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오히려
구세주이신 그 분을 배척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에 대한 영적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심판 받아 마땅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며 특권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기에 그 분의 자녀 된 권세는 세상이 주는 권세와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확실히 알고 그 권세를 사용하는 성도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가진 권세와 특권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해 절망과 좌절을 맛 볼
때가 많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과 동행함으로 그 분의 충만한 은혜와 주시는 권세를 누리며 세상에 끌려가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이끌며 담대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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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5) 말씀 묵상 (요한복음 1장1절, John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한복음은 그 첫머리에 예수님을 ‘태초’ ‘말씀’, ‘하나님’이라는 세 개의 단어와 관련된 분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시작의 경계를 넘어선 영원한 존재이시자 창조주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말씀의 실재로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원자시며,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주시는 유일하면서도 온전한 ‘그 말씀'(로고스)이십니다.
한 마디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피조물인 인간이 아니라 신이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땅의 만물 위에
계신 하늘의 말씀,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빛의 말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능력의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전하는 ‘말씀’이 이제 시작됨을 온 천하에 선포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혼돈된 세상에 말씀으로 질서를 부여하신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예비하고
앞당기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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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4) 말씀 묵상 (시편 63편1절, Psalms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Oh GOD, you are my God, earnest I seek you,
my soul thirsts for you, my body longs for you in a dry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다윗은 왕이었지만 늘 하나님을 갈망하고 앙모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인 광야에서 조차 하나님을 앙모했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가지는 모든 특권들보다 하나님을 뵙고
가끼이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는 현재 쫓겨난 몸이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모습은 정말
놀랍습니다. 다윗은 말 그대로 하나님만을 갈망하고 앙모하는 자로서 분명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모습이며,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갈망해야 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말은 쉽지만 삶으로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외에도 우리가 간절히 찾는 것이 있습니까? 왜 그것을 찾고 있습니까?
그것을 얻는다면 만족할까요? 오래 가지 않고 다시 목마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 오직 하나님만 찾고 찬양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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