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9/25) 말씀 묵상 (히브리서 9장28절, Hebrews 9:28)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So Christ was sacrificed once to take away the sins of many people;
and he will appear a second time, not to bear sin, but to bring salvation to those who are waiting for him.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분은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단번에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그렇게 되신 것은 그 분 자신의 죄 때문이 결코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하여 상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 시와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분은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처음오실 때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의인을 찾으러 오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 분이 다시 오실 때는 백성들의 죄를 당당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 분을 찾고 바라는 자들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온전하고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야말로 구원이 완성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를 미련하게 저버리지도 말고,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까지
그 구원을 완전히 소유한 것처럼 교만치도 말며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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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4) 말씀 묵상 (이사야 29장31절, Isaiah 29:31)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The Lord says; ‘These people come near to me with their mouth and honor me with their lips,
but their hearts are far from me.
Their worship of me is made up only of rules taught by men.
지금 남 유대인들의 죄는 그들이 종교적인 행위로 하나님을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외형과 가식에 속으실 리가 만무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이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말만을 앞세우는 것에 불과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신앙은 단지 입술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지 결코 마음으로 드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장로들의 유전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율법보다 더욱 중요했고 또 유효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가증한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성경의 말씀보다는 교단의 교리를 더욱 내세우는 모습을 보게 되며, 신앙을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지도자들도 간혹 발견되어, 세상의 지탄과 조롱을 받곤 합니다.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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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3)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5장5-6절, 1 Thessalonians 5:5-6)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You are all sons of the light and sons of the day. We do not belong to the night or to the darkness.
So then, let us not be like others, who are asleep, but let us be alert and self-controlled.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빛과 낮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도들이 빛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자녀인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예수님과 같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분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
비추는 빛이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주의 말을 밎이할 만반의 자세가 갖추어 있어야
합니다. 원래 어두움의 자녀였던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되어 빛 가운데 거하게 된 것은 전전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과거의 어두운 행실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다운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성도들은 믿지 않는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 가운데도 때로 세상 일에
탐닉하여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순간적인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함으로 영적으로 수면 상태에 있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빛의 자녀인 믿는 자들이 그러니 세상이 밝아지지 않는 겁니다.
불신자들은 신앙에 무감각하므로 비신앙적이고 부도덕한, 영적으로 잠을 자는 자들과 다를 바 없겠지만, 빛의
자녀들은 주님의 재림이 점점 가까워짐을 알고 더욱 경건하고 도덕적인, 신앙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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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2) 말씀 묵상 (아모스 5장12-13절, Amos 5:12-13)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For I know how many are your offenses and how great your sins.
You oppress the righteous and take bribes and you deprive the poor of justice in the courts.
Therefore the prudent man keeps quiet in such times, for the times are evil.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아신다고 하십니다. 즉 그 분은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감찰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모든 사악한 행위를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문에서 정의가
무너지면 악이 성행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기 되는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죄악은 역시
가난한 자에 대한 학대 행위입니다.
이렇게 법정이 부패하고 권력자들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악한 시대에는계속 불평하면서 법정 소송을 제기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가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징벌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이 심판하시도록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권면합니다.
이 시대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입니다. He is the final answer! 그 분 안에 우리의 살
길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것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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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1)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 3장17절, 1 Peter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It is better, if it is God’s will,
to suffer for doing good than for doing evil.
악을 행하다가 고난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누가보더라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악을 행하다가
고난 받는 것에 대해서 그 사람은 고난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고난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징계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선을 행해도 고난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고난은 아름다운 고난이며
거룩한 고난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들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고난 중에 있을 떄 우리 같은 죄인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핍박과 고난이 있습니다. 기독교 문화를 핍박하고 교리를 반박합니다. 이러한 시대를 사는
믿음의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피박과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할 때 훗날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날을 바라보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며 선을 행하는
아름다운 믿음이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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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0) 말씀 묵상 (이사야 41장17절, Isaiah 4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The poor and needy search for water, but there is none; their tongues are parched with thirst.
But I the Lord will answer them; I, the God of Israel, will not forsake them.
하나님께서는 가련하고 빈핍한 사라들, 곧 포로에서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십니다. 그 백성들이 목말라 할 때에
물을 원하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 그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사막과 황무지가 계속되는 길이므로, 물과 양식을 구하기기 상당히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하나님의 보살피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성취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오직 감사함으로 간구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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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9)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15장31절, 1 Corinthians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I die every day–I mean that, brothers–
just as surely as I glory over you in Christ Jesus our Lord.
사도 바울은 부활을 믿음으로 때마다의 위협을 무릅쓸 수 있고, 또한 날마다 죽는다고 단언합니다. 이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오는 일종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닥치는 대로 살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달라지고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참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부활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면 차라리 쾌락을 추구마며 매일을 즐기고 사는 것이 더 현명할 것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이라고
확신하니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것도 쉽지가 않으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부활에 대한 신앙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 매일의 삶을 긴장하게 만들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타락과 나태의 극치를
달리게 만듭니다. 우리가 믿는 부활 신앙이 확실하기에 우리는 어떠한 역경에서도 담대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천국에 합당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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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8) 말씀 묵상 (시편 116편3-4절, Psalms 116:3-4)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The cords of death entangled me, the anguish of the grave came upon me;
I was overcome by trouble and sorrow
Then I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O Lord, save me!
시인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의 위협과 고통과 슬픔 중에 있습니다. 그 절명의 때에 그가 한 일은 하나님꼐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자신을 구원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고통의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건지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문제는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문제는 있고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럴 떄 모든 것을 아시고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기요 어려움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도우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어려움 앞에서 우리는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 앞에서 사람들은 믿음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풀이는 것도 있겠지만 어떤 것들은
더 큰 어려움을 자초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십시다. 그러면 전능자의 구원을
분명히 경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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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4) 말씀 묵상 (잠언 3장9-10절, Proverbs 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Honor the Lord with your wealth with the firstfruits of all your crops;
then your barns will be filled to overflowing, and your vats will brim over with new wine.
지혜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있어서,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를 드려서 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권고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단순히 입술의 경배나 겸손과 신뢰함이 아니라 외적인 면과 함께 물질적인 드림도 따라야 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즉 재물을 경건하고
자선적인 목적에 사용할 것을 권고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물질을 선한 목적에 사용하여 물질로도 하나님 섬김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렇게 재물을 바르게 사용한 사람이 받는 축복은 그의 창고가 가득히 차고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바른 목적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면, 선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소유를 더 풍성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실 성도들은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가지고 있는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함을 알고
주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행함이 있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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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3)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13장5절, 2 Corinthians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Examin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test yourselves.
Do not realize that Christ Jesus is in you
unless, of course, you fail the test.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시험하라고 말합니다 그 시험은 스스로 자신들이 믿음에 있는가 하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신 줄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진정 버리운 자들입니다. 이 시점에서 바울은 그들이 회개하기를 촉구합니다. 즉 그들이 이제껏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오히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된 것은 바울의 우둔하고 미약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미성숙했거나 믿음에서 떠난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따라서 너희들이 믿음에 있는가를 살필
것과 그들 안에 그리스도꼐서 계신가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이런 물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우리 스스로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됩니다. 우리가 흔히 남을 비판하고 파단하기는 쉽지만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기란 어렵습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살핀다면 결코 남을 비파할 만하 자고함이
사라질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약한 자들을 위로하고 세우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도 내주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자신을 성찰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서는 성숙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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