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일입니다. (2/9)
오늘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주일입니다.
여러 힘든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믿고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베푸신 은혜로
결단하고 변화받고 치유받고 회복이 있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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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8)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2 Corinthians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for we walk by faith, not by sight.
사도 바울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은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그의 삶은 전적으로 종말론적 지향점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런 삶은 당연히
믿음이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합니다. 그런 삶은, 가야 할 본향을 바라보는 삶이요 영적인 삶인데,
그런 믿음의 삶이,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만들어 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가야할, 하지만 보이지 않는 본향에 소망을 두고 그 나라를
사모하며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을 사모하고
따라가면 유혹과 탐욕으로 인해 실족하기 쉽습니다.
언젠가 누구도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터인데, 그때
각자 이 땅에서 행한대로 상급을 받기에 최선을 다해,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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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7) 말씀 묵상 (시편/Psalms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나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Why, my soul, are you downcast?
Why s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고라 자손 중의 하나가 나라를 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쓴 것으로 여겨지는 시로, 세 가지 이유로 인해 낙심되고 불안했습니다.
첫째,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때문에
둘째, 하나님의 침묵 때문에
셋째, 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에.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렇게 낙심한 영혼이 소생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은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지 자신에게 외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문제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당장에 상황이 변하지 않을지라도 그분이 반드시 도우실 것을
믿기에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환경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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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6)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So do not fear;
you are more valuable than many sparrows.
참새는 당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값싼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새까지도 돌보시는 분으로, 참새의 죽음조차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통제권을 벗어날 수 없는데 그런 절대적인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알고 계시며 깊은 관심을 보이십니다. 심지어 그분은 각 사람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는 자상하신 분이시기에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에 믿음의 사람들이 받을 고난을 이미 알고 계시지에 모든 것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사랑하시고 지켜보시고 구원하실 것을 신뢰하면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됨을 알려주십니다. 환경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출 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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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5)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Enter through the narrow gate;
for the gate is wide and the way is broad that leads to destruction,
and there are many who enter through it.
크고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과 대조를 이룹니다. 단순히 길이 크고 넓기 떄문에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그 길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보편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쉽고 편안한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과 동시에 예수님을
찾는 자가, 따르는 자가 많지 않다는 실제 현상을 설명합니다.
좁은 문은 좁고 협착한 길을 따라가다가 보면 나오는 문으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가는 넓은 길이라도
예수님의 길이 아니면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당장은 힘들어도 주님의 길을 가야
생명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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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4)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For truly I say to you,
until heaven and earth pass away, not the smallest letter or stroke
shall pass from the Law until all is accomplished.
‘일점’은 헬라어의 가장 작은 알파벳이며 히브리어의 ‘를 나타내며 일획은
문자의 작은 획을 의미합니다. 이 문장은 율법이 결코 없어지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이 온전히 율법을 준수할 수 있으며 자신들이
바로 그 좋은 사례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율법을 준행하는 의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은 율법의 원래 뜻을 왜곡했고 다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외적인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율법의
근본까지 온전하게 성취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으며, 그분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믿는 사람이 율법을 성취하는, 의로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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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3)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산상수훈 가운데 팔복의 여섯번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청결한 자’는 유대인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단어로 율법에 명시된
정결법을 상징합니다.
‘마음’은 겉모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속을 강조하는 말로 겉이 아닌 속이
깨끗하고 정결한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잘사는 사람인데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외적으로 율법을 잘 지키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차별하고 돈을 사랑하는
위선적인 이스라엘에게 마음이 깨끗한 자가 진정 행복한 자요 그런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전지하신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저 보이는
외모를 중요시 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보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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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2/2)
오늘은 2월 첫째 주일입니다.
여러 불공평하고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일들로 인해
나라가 흔들리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때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며
믿음을 확고히 할 뿐만 아니라 영적인 분별력도 얻어
진리를 왜곡하고 미혹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나라마저도 무너뜨리려는 악한 세력들을 바로 보고
나라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욱 기도하며
진리로 바로 세우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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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Galatians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there is neither slave nor free man,
there is neither male nor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로, 예수 안에서 하나 됨을 말합니다.
또 예수 안에서 하나 됨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차별은 없습니다. 모두가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동등합니다.
혈통, 신분, 남녀의 차별은 복음의 진리 안에서 무너지고 모든 믿음의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요 평등합니다. 율법이 기준이 아니고 은혜가 기준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후,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서 차별하고 정죄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합니다.
혹시 아직도 학벌이나 지위나 배경이나 외모나 다른 어떤 것으로든 지체들을
차별하거나 판단하거나 정죄하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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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31)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Galatians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lives in me;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삶이 지닌 의미를 장엄하게
묘사합니다. 그 삶은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삶입니다. 그 삶은 율법에
대해서는 죽은 삶이요 하나님을 향해서는 사는 삶입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죽었으니 더 이상 율법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고 대신
하나님을 향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으로 규정합니다. 또한 이 삶은 바로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뿐이기에 그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면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나 세상 철학이나
가치관에 따라 살지 않고 우리 안에 사시는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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