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9) 말씀 묵상 (신명기 12장7절, Deuteronomy 12: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There, in the presence of the LORD your God,
you and your families shall eat and shall rejoice in everything you have put your hand to,
because the LORD your God has blessed you.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아무 곳에서나 자기 소견대로 예배했던 이교도와는 반대로 하나님이 그 분의
이름을 두시려고 특별히 선택한 장소에서만 제물을 드려야 함을 가르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입니다. 다시 말해 중앙 성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셨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사와 제물로 자기 마음대로 드려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주신 방법대로 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복을 기억하며 온 가족이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이 구절은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보여 줍니다. 한 해의 추수가
끝나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중 얼마를 구별해 잔치를 베풀고 온 가족이 참여해 기쁨으로 즐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정의 중심은 당연히 하나님이 되어야 하기에 가족의 구원과 믿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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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8) 말씀 묵상 (신명기 8장3절, Deuteronomy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He humbled you, causing you to hunger and then feeding you with manna,
which neither you nor your fathers had known, to teach you that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the LORD.
이스라엘은 광야 훈련을 통해 마음을 겸손하게 하여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이 구절은 만나
사건에 대한 모세의 해석입니다.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물론 빵이지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만나와 같은 영의 음식이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것ㅇ르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한다는 것을 직접 가르쳐 주시기 위해 만나를 주셨습니다.
광야생활은 선민으로서 바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연단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맛보는
시간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살며 뜻하지 않은 고난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이라고 받아들입니까?
연단 중에 있을 때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고난 가운데 함께 계심을 믿어야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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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7) 말씀 묵상 (신명기 6장18-19절, Deuteronomy 6:18)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랸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
Do what is right and good in the LORD’s sight,
so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you may go in and take over the good land
that the LORD promised on oath to your forefathers,
thrusting out all your enemies before you, as the LORD said.
여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곧 하나님께 칭찬받을 일, 율법을 잘 듣고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모든 대적을…
앞에서 쫓아내시겠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만히 있다가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시면
뒤따라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백성 중에서 군인들을 뽑아 가나안 부족들과 전투를
벌여 몰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한 이유는 강한 군대를 소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수를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육적인 문제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려면 모든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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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6) 말씀 묵상 (신명기 1장30절, Deuteronomy 1: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The LORD your God, who is going before you, will fight for you,
as he did for you in Egypt, before your very eyes
모세는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기
위해 항상 앞서가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하나님, 광야 여정 동안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의 실질적인 지도자요,
주관자요, 보호자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
역할만 하면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성도들의 앞길을 계획하시고 예비하고 계십니다. 또한 계획하신 일을 앞서 행하십니다.
삶의 수많은 문제의 해답은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움과 난관이 앞에
놓여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하나님께서은 오늘도 우리보다 앞서 행하고 계시기에 그 분보다 앞서 가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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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5) 말씀 묵상 (시편 100편3절, Psalms 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Know that the LORD is God.
It is he who made us, and we are his; we are his people, the sheep of his pasture.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복잡하고 정교한 물건일수록 많은 수고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하나님을 닮은 고차원적인 피조물입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마치 자신이 신앙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믿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선택의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요 15:16) 또한 내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의 건강과 재물, 시간과 재능도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나를
가장 복되게 하시며 영원토록 책임져 주십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초점을 맞춘 신앙생활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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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4) 말씀 묵상 (마가복음 7장15-16절, Mark 7:15-16)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Nothing outside a person can defile them by going into them.
Rather, it is what comes out of a person that defiles them.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형식적인 율법 준수 배후에 도사린 거짓된 마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겠다는 마음을 폭로해 버립니다. 문제는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들의 마음이 부패한 것입니다.
신앙이란 외적인 형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의미 있게 만드는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건함과 숭고함을 느낄 수 있어야 신앙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 인간의 행동이 마음과
생각을 대변하기 때문에 신앙인에게는 선한 행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마음이라는 말은 지성을 가리키기도 하고 감성, 의지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연합해 온전한 하나의 인격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더럽게 만드는 것은 내 마음입니다. 그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회개입니다. 나가는 것이 더럽지 않도록 회개를 통해 마음을 정결케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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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3) 주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께 한 번을 드려도 제대로 예배를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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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 말씀 묵상 (마태복음 5장13절, Matthew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by men.
예수님은 우리를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소금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짠맛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여 그 순수성과 정직함과 성실함을 유지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소금은 스스로 희생하여 남을 이롭게 합니다. 즉 소금은 자신이 녹아짐으로 여러 음식물에 짠맛을
공급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희생을 통하여 새로운 맛, 새로운 생명력을 이웃에게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의 직분을 어떻게 행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회의 부패 여부가 결정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상이 부패한 이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자로서 맛을 잃었기 때문이
아닌지… 우리는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에서 소금과 같은 역할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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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 말씀 묵상 (마태복음 5장9절, Matthew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화평케 함’은 긍휼히 여김에서 비롯한 성품으로 그리스도인이 형제를 불쌍히 여길 때 갖게 됩니다.
단순히 유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화목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 인간과의 화목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로, 딸로 불릴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 역시 평강의 왕이시고, 성령 하나님은 화평의
영이십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그 자신이 우리 모두와 화목하신다고 선포하셨으므로, 하나님은 서로
화해할 줄 모르는 자들을 그 분의 자녀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서 화평케 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화평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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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31) 말씀 묵상 (마태복음 18장35절, Matthew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This is how heavenly Father will treat each of you
unless you forgive your brother from your heart.
성도들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권세는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권위있는 것이
바로 용서하는 권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죄 용서를 생각하면 용서하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타인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은 비굴이 아니라 관용이며, 마귀를 제압하는 능력입니다.
본래 용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권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분을
영접하는 모든 성도에게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통한 죄용서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죄 용서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한 자들은 자신에게 죄를 범한 형제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죄 용서의 은혜를 주변의 형제자매들에게 한없이 베푸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우리가
받은 죄용서의 은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용서하지 못합니다. 죄 범한 형제를 용서해 주므로 그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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