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26) 말씀 묵상 (시편 25편14절, Psalms 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The LORD confides in those who fear him;
he makes his covenant known to them.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임하는 축복 중의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그를 친밀하게
여겨 주시고 구원에 대한 언약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내세의 축복과 아울러 현세적 축복도 약속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 ‘친밀함’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비밀 회담’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아무런 비밀도 없이 그의 뜻을 보이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비밀스런 교제’나’ 밀접한 관계’를 뜻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들어가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언약의 법도를
깨달아 알게 되므로, 하나님의 언약의 비밀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체험하고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분과 깊은
사귐을 가지는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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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5)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6절, Matthew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But when you pray, go into your room, close the door
and pray to your Father, who is unseen.
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유대인들은 정해진 기도 시간 (3, 6, 9시)에 회당에 도착하지 못하면 길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할 수 없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기도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기도는 그 자체로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이미 상을
받은 것이므로 하나님께는 상을 받을 것이 없습니다.
기도는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신앙 행위 중에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들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하게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대표기도를 할 때나 통성으로 기도할 때 사람들을 의식하며 기도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미사여구가 들어가고 가식이 섞이기 쉽습니다. 반면에 아무도 듣지 않는
상황이라면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은밀한 죄도 고백할 수 있기에 솔직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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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4)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3절, Matthew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But when you give to the needy,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hand is doing.
잘못된 구제의 예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구제하는 경우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나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마음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는 동기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구제를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상 받는 참된 구제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라는 것은 자신을 기특하게 바라보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자신을 높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적 구제는 구제의 대상을 긍휼히 여기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자세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서 상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가난한 자를 돕고 선교사들을 후원한 것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스스로 뿌듯해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동기가 잘못되면 그 행위가 거짓된
경견을 만들어 내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우리의 선행의 동기가 무엇인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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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23) 주일입니다.
오늘은 성삼위일체 전능하신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한 번을 드려도 제대로 드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기를
선포되는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새롭게 거듭나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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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2)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1절, Matthew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리라
‘Be careful not to do your acts of righteousness’ before men,
to be seen by them.
If you do, you will have no rewards from your Father in heaven.
예수님은 바리새인과는 다른, 참된 경건을 추구하는 동기와 태도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즉 의로운 행위의 동기가 사람의 칭찬에 있어서는 안 됨을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옳은
행위여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순종이 되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바리새인이 행하는 구제의 동기는 대상에 대한 긍휼한 마음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있지 않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행위로,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으므로, 아버지께 어떤 상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참된 경건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경건한 삶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참된 경건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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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1) 말씀 묵상 (마태복음 4장23절, Matthew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Jesus went throughout Galilee,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preach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diseases and sickness among the people.
예수님이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하신 사역은 세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1. 회당에서 가르치심 (유대인들에게 구약을 주해하여 설명하는 사역) (teaching)
2. 천국 복음을 전파하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preaching)
3. 치유 사역 및 축귀 사역 (healing)
이 세 가지 사역은 이후 제자들, 곧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역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듯이, 사도들은 회당을 거점으로 복음을 가르쳤고,
치유 사역과 축귀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현대 교회에서 위의 세 가지를 표어로 내걸면 고리타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성도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물론 2천년 동안 교회가 행한 사역이므로 고리타분하다,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에수님처럼 사역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이 세 가지 사역을 진부하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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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0) 말씀 묵상 (마태복음 4장4절, Matthew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Jesus answered,
‘It is written;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God.’
마귀의 첫번째 시험에 대하여 주님은 신명기 8장3절 후반부를 인용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음식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더 우선되는
인간의 본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간의 최우선의
본분을 지키면 하나님이 생존을 책임져 주십니다.
순종이 최우선이라는 하나님의 기준을 망각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죽지만,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유혹을 물리치고 순종하여 승리하십니다.
사람의 생명은 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달려 있음을 선언하십니다.
마귀의 시험은 현실적으로 절박한 필요를 강조함으로써 할 수 있으면 믿는 자들까지도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을 자극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방법으로 공격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처럼 진리 가운데 굳게 서서
마귀가 도전할 때 말씀으로 응전하여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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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9) 말씀 묵상 (마태복음 3장17절, Matthew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And a voice from heaven said,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I am well pleased.’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기름 부음 받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밝혀줍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곧 ‘왕’이시며,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보여 줍니다. 온 땅을 다스리실 왕께서 종의 모습으로 제물의 역할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난 소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선포했는데, 그 내용은 사랑이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의 근본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요일 4:8),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일 역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으로 오셨고, 사랑으로
이루신 것이 예수님의 사역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사랑 안에서, 사랑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에서는 교만하거나 자기 힘을 과시하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뒤를 따르기 원하는 우리 역시 사랑과 겸손으로 맡겨진 사역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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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8)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22장21절, Revelation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로서 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비는
것으로 시작했고 (1:4-5) 이제 편지를 끝내면서, 사도 요한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기 ‘모든 자들에게’에 해당하는 원어직 의미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을 지칭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주림의 재림으로 완성될 심판과 구원은 모든 성도와 함께 죄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신앙적 자세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와
그 재림을 기쁨으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실하게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풍성히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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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7)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22:20절, Revelation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H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says,
‘Yes,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내가 속히 오리라’는 그리스도 자신의 재림에 대한 언급은 이제까지 진술해 온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보장함과 동시에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구속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를 줍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자주 사용되던 기도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시사합니다. 흔히 헬라어 ‘마라나타’로
음역한 이 말은 아람어 ‘마라나 다’에서 온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과 모든
인간사를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고백을 나타냅니다.
성도들은 이 모든 계시를 증언하시는 분,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말씀에
요한처럼 자연스럽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화답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혼란스러운 현재의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이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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