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10) 말씀 묵상 (사도행전 20장24절, Acts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소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if only I may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
-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spel of God’s grace.
바울은 끊임없이 그리고 오로지 주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런 현실 앞에서 그가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생명이 참으로 귀한 것이지만, 자기 생명이 자기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명 때문에 자기 생명의
존재 이유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그에게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유일한 목적은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마치는데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달려갈 인생길이 곧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주님을 위한 것입니다. 복음은 생명으로 생명을 전하는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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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9) 말씀 묵상 (사도행전 19장20절, Acts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In this way the word of the Lord spread widely
and grew in power.
이 말씀 직전에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마술책을 모두 모아놓고 사람들 앞에서 불사르며
회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변화를 보여 주는 행동이었으며.
그들이 의지했던 마술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 일로 인하여, 주님의 말씀이 힘 있게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마술이 그들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었고 의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주님과 말씀 앞에서 겸손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말씀을 통해 얻어지고,
진정한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생겨납니다.
진정한 신앙은 가까 신앙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성도는 진정한 신앙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의 다림줄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기초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고,
하나님을 바로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다. 그것이 진정한 신앙을 소유하는 길이기에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좋은 습관을 가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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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8) 말씀 묵상 (사도행전 13장22절, Acts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After removing Saul, he made David their king. He testified concerning him;
‘I have found David son of Jesse, a man after mine own heart;
he will do everything I want him to do.’
바울은 사울왕의 죽음과 다윗의 등극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사울왕을 ‘폐하시고’라는 말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는 왕정 국가가
성입되었어도 하나님의 개입이 계속 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점은 왕가의 정통성을 신적인 권위로 세우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열망을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음에 맞는 (합한)’이란
표현은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 구속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임을 부각시킵니다.
사람들의 계획은 자신들을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사울왕의 실패와
같이 더 비참한 실망의 구덩일 몰고 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무지와 불신은
오늘날에도 자주 반복되고 있는 바,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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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7) 주일입니다.
오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전심으로 예배하는 주일입니다.
외적인 압박과 불공정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예배를 드리며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지혜와 힘과 능력을 덧입는 복된 시간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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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6) 말씀 묵상 (사도행전 11장21절, Acts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The Lord’s hand was with them,
and a great number of people believed and turned to the Lord.
예루살렘교회는 처음부터 많은 핍박과 환난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고난의 역사입니다.
핍박과 환난은 그 자체로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지만, 복음 증거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오히려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그렇게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유대 각 지역과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예언하셨던 (행 1:8)
말씀이 단계적으로 성취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시매 복음이 그냥 전파된 것이
아니라 능력과 함께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 삶에 환난과 핍박이 다가온다면, 그것이 복음 증거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다.
환난을 통해 선교적 사명과 사랑의 사명을 감당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환난이 있습니까?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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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5) 말씀 묵상 (사도행전 10장15절, Acts 10: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The voice spoke to him a second time,
‘Do not call anything impure the God has made clean.’
베드로가 환상 중에 들은 두 번째 소리가 소개 됩니다. 이 글을 읽는 사도행전의 처음 독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던 음식법에 관한 가르침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부정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방인의 집에서 만든 음식도 율법의 규정에
따라 조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베드로가
고수하고 있던 음식법과 정결법의 울타리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한 쪽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자신의 기호와 판단을 의지해 복음 증거의
대상을 결정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온전하게 이뤄질 수 없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거인들은
원수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결정권을 하나님께 드리고 온전히 순종하며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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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4) 말씀 묵상 (사도행전 7장33절, Acts 7:3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Then the Lord said to him, ‘Take off your sandals;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 ground.’
근동 지방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샌들을 싣고 다녔는데, 그것은 그 지역이 고온건조하며
먼지가 많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과 발은 먼지로 덮여 있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생각하기를 신은 더럽다고 여겨서, 제사장들 같은 경우 성소에서 신을 벗었습니다.
모세에게 들린 ‘하나님의 소리’는 그를 향한 유대인들의 비방과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이를 인용하면서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한 것은
장소로서의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바로 거룩한 땅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생각하며 우리의
발에서 신을 벗을 뿐 아니라, 단정한 자태를 가져야 하고, 더불어 우리 내면의 더럽고 가증하며
추한 면까지 다 벗어 버린 후 주님 앞에 나아가야 진정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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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3) 말씀 묵상 (사도행전 2장33절, Acts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Exalted to the right hand of God,
he has received from the Father the promised Holy Spirit
and has poured out what you now see and hear.
베드로는 예수님의 승천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이야말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은 능력, 생명, 그리고 구원을
상징하는 바, 그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님을 높이셨다고 선언합니다.
베드로는 완전한 복음을 선포하기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형과 부활에서
멈출 수 없었고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해 높임을 받으신 것과 곧 이어 성령이 오신 사건을
연결합니다. 나사렛의 한 미천한 목수는 메시야였을 뿐 아니라. 이제 하늘에 계시며
오순절 모든 소동을 이르키신 분이십니다.
성도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일에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그리스도 대신 보내주신 성령님과 함께, 그분이 이끄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때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성도는 그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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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 말씀 묵상 (창세기 28장15절, Genesis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I am with you and will watch over you wherever you go,
and I will bring you back to this land.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done what I have promised you.
이전의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언약이 추가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셔서 그가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를 지키시고 인도하셔서 그가 지금 누웠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선물보다도 가장 값진 것은 바로 그분 자신입니다.
야곱은 집을 떠나 알 수 없는 미래 세계로 발을 내딛으며 두려움, 불안, 막연함을 느낍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모두 이뤄질 때까지는 그를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이 놀라운
약속,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자 의지입니다. 때문에 그분의 손에 붙잡여 있는 우리 역시,
오늘과 같이 팬데믹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으며
불안을 이기고, 끝까지 지켜 주실 것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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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 말씀 묵상 (창세기 26장22절, Genesis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He moved on from there and dug another well, and no one quarreled over it.
He named it Rehoboth, saying,
‘Now the LORD had given us room
and we will flourish in the land.’
흉년에 이삭은 오히려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시기하여 그의 우물을 메워버릴
정도였습니다. 당시 식수와 목축업을 위해 절실히 필요했던 우물은 부의 상징이며 복의
대명사였습니다.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블레셋 사람이 방해를 했지만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았고, 그들이 막으면 다른 곳을 팠습니다.
세 번째로 판 우물ㄹ은 물도 풍성했고 블레셋 사람들이 더 이상 시비를 걸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려 했던 노력의 결실입니다. ‘르호봇’이라는 고백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이삭의 믿음을 드러낸 표현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리석이 보이는 때가 있습니까?
한 두 번이 아니라 계속 손해 보고, 남만 이롭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렇더라도 성도는 선을 베풀어 평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비록 손해를 보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선으로 악을 대하면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어 갚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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