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0/23) 말씀 묵상 (역대하 7장14절, 2 Chronicles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if my people, who are called by my name, will humble themselves and pray and seek my face and turn from their wicked ways,
then will I hear from heaven and will forgive their sin and will heal their land.
성전은 제사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집이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거나 메뚜기 떼가 곡식을 먹어 버리거나
전염병이 유행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악에서 돌이켜 겸손히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죄를 사하시며, 또한 땅도 고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하는 모든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비록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지만, 그리고 자신은 멀리 바벨론 나라에 와 있지만,
말씀을 기억하고 성전이 있는 방행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번듯한 성전 건물이 있고, 그 곳으로 즐겨 내왕한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늘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진실된 경외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예배당에 들어서면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혹시 하나님께 숨기는 무엇 때문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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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22) 말씀 묵상 (누가복음 13장24절, Luke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Make every effort to enter through the narrow door,
because many, I tell you, will try to enter and will not be able to.
주님은 구원을 좁은 문으로 표현하며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좁은 문이라고 하셨을까요?
그 문은 때가 되면 닫히는 문입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기회의 문이지만, 영원히 열려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날, 그때가 되어 주인이 문을 닫으면 아무도 그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에서 좁은 문입니다.
세상에는 말씀대로 사는 이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구원의 문은 좁은 문입니다.
하지만 그 문은 언제나 역전의 기회가 있는 문입니다. 먼저 시작한 사람이 나중 되고, 나중에 시작한 사람이
먼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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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20) 말씀 묵상 (누가복음 12장34절, Luke 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왕이신 주 예수님의 다스림을 구한다는 것이며.
기쁨으로 그 분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뜻을
따라 자기 소유를 사용합니다.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쌓는 것이요,
하나님에 대해 부요한 자가 되는 삶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보존되어 후에 다 보상을 받습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은 무엇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것을 소망합니까? 흔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나 신분 상승이나 더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보물을 자신을 위해 쌓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을 좇는 삶입니다. 즉 그 마음이
자신 혹은 이 세상에 있는 삶입니다. 우리 보물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의 보물을
하나님께 두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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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9) 말씀 묵상 (누가복음 10장36-37절, Luke 10:36-37)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Which of these three do you think was a neighbor to the man who fell into the hands of robbers?
The expert in the law replied, ‘The one who had mercy on him.’ Jesus told him, ‘Go and do likewise.’
우리에게 이웃은 누구인가? 우리가 사랑할 만 하거나, 우리에게 선대하거나, 우리와 신앙적 성향을
같이하는 사람으로, 우리의 이웃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이웃 사랑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웃 사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긴급한 도움을 주는 것이며,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적극적으로 평강을 누리도록 돕는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내게 위험한 일이라 할지라도 또한 경제적인 손실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행하는
것이 바로 참된 사랑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실제로 시간과 돈과 정욕을 소모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개인주의는 성도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지체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서서 주님의
사랑을 나누십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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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8) 말씀 묵상 (누가복음 7장38절, Luke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and as she stood behind him at his feet weeping, she began to wet his feet with her tears.
Then she wiped them with her hair, kissed them and poured perfume on them.
예수님이 계신 곳에 불쑥 찾아온 여인은 그 동네에서 죄인으로 알려진 여인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고 향유를 담은 비싼 옥합을 가지고 온 겁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으며,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은 행동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과
감사의 표현이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충격적인 것입니다.
신자의 삶과 교회의 제일 되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자로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마땅히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이 때 드리는 감사와
예배는 예수님께 나아와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마음과 소유 전부를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사해 주시고 구원을 주신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며 충분히 예배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형식적이고 억지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전부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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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7)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4장6절, Galatians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Because you are sons, God sent the Spirit of his Son into our hearts,
the Spirit who called out, ‘Abba, Father.’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율법에 종노릇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율법의
짐으로 신음하는 인생이 아니라 자유한 인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로서, 하나님의 유업을 얻은 상속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한 보장을 누리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후견인인, 율법 아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 덕분에 우리 인생은 구원과 자유의 길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의 시간이 도래했는데도 종과 다름 없는 인생을 산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자요
상속자로 풍성한 인생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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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6)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2장16절, Galatians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다.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observing the law,
because by observing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복음의 핵심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자유를 누리게 된 사람들이 마치 이방 죄인들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자리를 피하는 위선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율법의 행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요, 마치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율법에 대해 죽었다고 선언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대해 사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이고, 또한 그 은혜가 주는 자유함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은 후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거나, 이전 것에 대한 미련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바라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는 은혜의 법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매일 죄에서 자유한 자로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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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5)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1장10절, Galatians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Am I now trying to win the approval of men or of God? Or am I trying to please men?
If I were still trying to please men, I would not be a servant of Christ.
종은 주인을 위해 일하는 존재입니다. 이 목적의식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또한 보냄을 받은 사람은
자신을 보내신 분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자신을 보내신 분이 바로 자신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분명히 정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목적에 맞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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