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23) 말씀 묵상 (다니엘 9장18절, Daniel 9: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조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Give ear, O God and hear; open your eyes and see the desolation of the city that bears Your name.
We are not make requests of you because we are righteous,
but because of your great mercy.
다니엘이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과 형편을 돌아봐 달라고 간구하는 이 기도는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울거나 보채는 모습과 같습니다. 또한 다니엘은 기도의 근거가 백성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긍휼에 근거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긍휼과 은혜와 자비로우신 하나님으로, 회개하는 자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므로, 그분을 믿음으로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심에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심판에서 회복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민족의 회복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근거하여 기도할 때 가능할 줄 믿습니다.
오늘 나라를 위한 기도를 올려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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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2) 말씀 묵상 (디도서 3장9절, Titus 3:9)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But avoid foolish controversies and genealogies and arguments and quarrels about the law
because these are unprofitable and useless.
예나 지금이나 신앙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 ‘어리석은 변론’들로 인해 공동체가 시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어리석은 변론’이란,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것이나, 쉽게 대답할 수도 없고
또 설사 대답할 수 있다고 해고 성도들의 생활에 실제적 도움이나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논쟁들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에는 하나님의 본질, 천사들, 여호와라는 이음의 권능 등에 관한 의미없는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예로, 예수님의 어느 쪽 옆구리가 창으로 찔렸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또한 족보 이야기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제사장의 후예나 아브라함의 후예로 높이기 위해 자기들의 족보를 성경의 인물과 연결시켜
만든 사실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렇게 형식적이고 생명력이 없는 행위들을 어리석고 허탄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이런 것들은 어리석은 것일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에 많은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신앙의 연수, 직분,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크기 등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으나, 성도들이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명심하고 겸손한 자세로 복음만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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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1) 말씀 묵상 (시편 50편 23절, Psalms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He who sacrifices thank offerings honors me
and he prepares the way so that I may show him the salvation of God.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구원을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미신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자들에게 대한 경고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진정으로 의지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요 그런 예배자가 받을 복입니다.
또 율법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위선적인) 자들에게는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일 것이라는 깨우침과 경고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참된 예배자의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비록 이제까지는 악인으로 살아왔을지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에게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꼐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가 돌이켜 악에서 떠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악인이 만일 모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율례들을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죽지 않고
그가 행한 공의로 살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에서 떠나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록 지금 어떤 사람이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사랑으로 인내하며 기도하며 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받고 받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지만 복음을 뿌리는 것은 먼저 믿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열매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고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뿌리면 됩니다. 오늘 만남 가운데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기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모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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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0) 말씀 묵상 (로마서 6장22절, Romans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But now that you have been set free from sin and have become slaves to God,
the benefit you reap leads to holiness, and the result is eternal life.
신실한 주인은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종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 종을 자신과 함께 영광스러운 식탁에 앉게 합니다.
이 땅에서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거룩한 종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하늘의 거룩한 영광과 영생인데 그것을 버리고 다시 죄를 지어 죄의 종이 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골인 지점을 앞에 두고 조금만 달리면 승리의 월계관을 쓸 마라톤 선수가 유혹에 넘어가 경주를 포기한다면 이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의의 무기가 되어 끝까지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의 사건처럼 일어납니다. 과거의 모든 죄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렇지만 구원을 얻은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구원을 얻은 이후에는 거룩한 삶 즉 성화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 성화의 삶은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생과 영광을 위한 준비입니다.
마지막까지 성화를 이루고 믿음의 경주를 마치면 그 때에는 주님과 같은 썩지 않을 몸을 입는 영화로운 삶이 됩니다.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세상과 죄와 구별되는 성화의 삶을 경주하는 하나님 자녀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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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9) 말씀 묵상 (이사야 65장23절, Isaiah 65: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They will not toil in vain or bear children doomed to misfortune;
for they will be a people blessed by the Lord, they and their descendants with them.
이사야서 40장부터 마지막 66장까지는 유대의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선지자는 현재 삶의 반전에 관해 언급을 합니다. 어떤 반저닌가?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인 삶이 변하여 축복의 삶으로 바뀔 것이며,
열심히 일해도 거둘 수 없었던 삶이 이제는 그런 헛수고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이 생산한 것’은 그들이 낳은 자녀를 가리킵니다. 자녀들이 전쟁과 질병과 굶주림과 같은
재난에 희생당하는 경우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축복이 자녀들에게 상속될 것을 말합니다.
저주의 시대가 끝나고 축복의 시대가 대대손손 지속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도래로 오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은 신자들이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로 그 나라는 메시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찬송가에서도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함과 동시에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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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8) 말씀 묵상 (마태복음 28장19-20절, Matthew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상 함께 있으리라.
Therefore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and teaching them to obey everything I have commanded you.
And surely I am with you always, to the very end of the age.
이 말씀은 흔히들 예수님께서 주신 지상 대명령이라고 합니다. (The Great Commission)
오늘날 교회가 이 위대한 명령에 대해 취해야 할
첫 번째 행동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이스라엘 울타리는 커녕, 사마리아 고을에도 넘어가지 못했고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족속에게로 가야 합니다.
두 번째 행동은,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에 순종함으로 그 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따라 성령의 침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세 번째 행동은, 예수님이 주신 명령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사명을 수행하고자 온 힘을 기울이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교회가 누릴 특권인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교회와 성도는 제자 삼는 것을 사역과 인생의 방향과 목표로 만들고 나가야 합니다.
만군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진실로 주님이 재림하시기까지 우리와 함꼐 하시는 그 약속은 우리가 누릴 특권이요 보장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험난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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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7) 말씀 묵상 (예레미야 17장5절, Jeremiah 17: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께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This is what the Lord says;
Cursed is the one who trusts in man, who depends on flesh for his strength and
whose heart turns away from the Lord.
이 구절은 유다 백성이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과 같은 이방 강대국들을 의지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즉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돌아선)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런 모습은 하나님의 저주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사람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과 상관 없이 혼자 힘으로 제대로 바르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근원을 잃은 채 죽어 가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애굽을 의지하려 했던 유다 백성들은 BC 586/587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예언되었던 대로바벨론에 끌려가 거기서 70년간 포로로 지내게 됩니다.
비록 유다 백성이 언제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우상숭배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저주스러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어려움이 없는 인생이 있겠습니까? 때로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 인생 역전이 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만을 다시 바라보는 주바라기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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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6) 말씀 묵상 (히브리서 13장1-2절, Hebrews 13:1-2)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Keep on loving each other as brothers. Do not forget to entertain strangers,
for by so doing some people have entertained angels without knowing it.
누군지 알지 못하는 히브리서 저자는 계속되는 박해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어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의 선진들처럼 끝까지 믿음를 지켜 승리할 것을 권면합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박해를 피해 떠도는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권면합니다. 참 어려운 권면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어려울수록 더 진리를 갈망하고, 더 가치를 발하게 됩니다.
사랑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사랑의 마음을 품고, 사랑의 손을 내밀 때, 오히려 평안을 얻게 됩니다. 믿음이 더 담대해집니다.
약함을 약함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강하게 됩니다. 그러니 저자의 권면처럼 고난 중에서도 형제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의 사랑은 우리의 정체성과 깊이 맞물려 있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또한 형제 사랑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방문하는 사람이나 여행자들을 대접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미덕이요
그로인해 한 영혼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아름다운 덕을 실천하는 날이 되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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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5) 말씀 묵상 (시편 141편 4절, Psalms 141: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Let not my heart be drawn to what is evil, to take part in wicked deeds with men who are evildoers;
let me not eat of their delicacies.
이 시편 141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지켜주시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하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진수란 말은 육체의 쾌락을 나타내는 말로 악인들이 부정하게 얻은 음식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종류의 쾌락은 매우 유혹적입니다. 다윗은 이처럼 입술의 보호만이 아니라 행위의 근원이 되는 마음의 보호도 함께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악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행한 것을 저주하고 복수하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혀와 마음을 살피고 인도하시 않으면 죄로 물든 언어와 생각들을 우리 스스로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보다 눈에 세상의 일들을 더 좋아하고
또한 눈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쾌락적인 것에 더 쉽게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죄의 유혹들을 이겨내고 죄와 타협하지 않기 위해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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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4) 말씀 묵상 (로마서 15장1절, Romans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We who are strong ought to bear with the failings of the weak
and not to please ourselves.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를 사해주신 구세주와 삶의 주인으로 믿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었지만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의 분량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있고 믿음이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강한 믿음을 가졌댜고 해서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고 실족하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격과 영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이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답답해 보이더라도, 오래 참고 이해하며 감싸 주어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을 내가 품고 도와주어야 할 사람으로 알고 그 어려움을 함께 할 때 공동체의 선을, 하나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그런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이 필요하고
기도도 필요합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차이가 바로 그런 기회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약한 사람입니까? 만약 강한 사람이라면 약한 자들의 약점을 받아주고 이해해 주며
사람으로 인내하고 그 약한 사람을 위해 기도함이 있습니까?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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