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10) 주일입니다.

오늘은 주일이기에
섬기는 교회에 나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올려드리십시다.


오늘의 (3/9) 말씀 묵상 (신명기 32장6절 하, Deuteronomy 32:6 b)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Is he not your Father, your Creator,
who made you and formed you?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기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물의 경계를
정하셨기에 그 분이 모든 것의 기원입니다.  기원을 안다는 것은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아는
것입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묵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됩니다.  더불어 우리
자신의 성품도 깨닫게 됩니다.  창조의 목적을 묵상할 때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 그리고 지녀야 할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인격과 미래의 꿈 까지도 세워주신 분입니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 속에 한 번도 안 계셨던 적이 없으신 하나님은 비단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입니다.  이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십니까?  아버지로 모시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의 (3/8) 말씀 묵상 (신명기 28장8절, Deuteronomy 28: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The LORD will send a blessing on your barns and on everything you put your hand to.
The LORD your God will bless you in the land he is giving you.
 
기독교는 추상적이거나 막연한 종교가 아니라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 무엇보다 실제적이며 구체적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개인에게 복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순종하는 민족에게도 복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민족은
국가 전체가 풍년을 맞아 많은 곡식을 저장하고 큰 수확을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과의 교역에
있어서도 주도권을 쥐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큰 축복 가운데 하나가 인간이 땀 흘린 대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과 기업에서 수고한 대로 얻는 축복은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악해서 성실하고 진실되게 일하는 사람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공의를 바로 세우실 것이기에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
하지 말고 흔들림 없이, 타협이 없이 맡겨진 일에 충성되이 수고해야 합니다.


오늘의 (3/7) 말씀 묵상 (민수기 14장9절, Numbers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Only do not rebel against the LORD. And do not be afraid the people of the land,
because we will swallow them up.  Their protection is gone
but the LORD is with us.  Do not be afraid of them.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 정복에 있어서 강경파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그리고 그 분의 약속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현실 상황에 가려서 능력의 하나님을 보지 못할 때, 그들은 상황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영적 소경의 눈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두 명의 정탐꾼이 아무리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설명해도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고 상상도 되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이 소경으로 세상을 살면 어떤 성황에서도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리게 되면,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신중한 것과 불신앙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혹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현실만을 바라보는 영적 소경으로 살지는 않습니까?


오늘의 (3/6) 말씀 묵상 (민수기 6장26절, Numbers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the LORD turn his face toward you and give you peace.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곧 평강이십니다.  그런데 죄가 우리에게서 그 분의
평강을 빼앗아버렸습니다.  사탄은 우리 안에 있는 평강을 없애기 위해 죄로 유혹을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죄가 채워져 있는 한 죄책감과 찔림과 더 큰 유혹으로 인해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평강을 빼앗아가는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평강을 선포하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를 멸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평강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십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강을 누리며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시시탐탐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죄를 그 분께 고백하고 도움을 구하여 평강을 잃지 않도록
하십시다.


오늘의 (3/5) 말씀 묵상 (민수기 6장25절, Numbers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the LORD make his face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하나님은 그 분의 자녀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를 좋아하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행복을 느끼듯이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구원하신
그 분의 자녀들을 바라보실 때 하나님은 기쁨을 금하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원하십니다.  은혜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와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죄를 지었다고 해서 절망하고 포기하면서 악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또
죄책감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죄와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 위협도 이기며 용서와 기쁨과 평안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여 계속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십시다.


오늘의 (3/4) 말씀 묵상 (민수기 6장24절, Numbers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성경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큰 감동을 얻는 순간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때 큰 감동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기 원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길 원하는 마음이 더 강렬합니다.  그 분은 택하신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복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복은 현세적인 동시에 내세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항상 드려야 한다는 중압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보다 하나님의 마음이 훨씬 뜨겁고 간절합니다.  아론의 축복은 제사장에 의한 축복의
선포지만 이 선포의 진정한 선포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얼굴이 당신에게로 향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3/3) 주일입니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시편 118:24)
This is the day that the LORD has made;
let us rejoice and be glad in it.
 
오늘은 구원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송과 감사와 경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올려드리십시다!


오늘의 (3/2) 말씀 묵상 (요한복음 14장21절, John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Whoever has my commands and obeys them, he is the one who loves me.
He who loves me will be loved by my Father,
and I too will love him and show myself to him.
 
사랑은 서로에 대한 신뢰입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신뢰하실 만한 사람이 아니라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신뢰하는 것은 그 분이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계명을 주신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분의 명령을 따를 수 있습니다.  처한 판단과 상활을 초월하여 그 분을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순종이며, 순종이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의지나 경험 혹은 들은 지식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까?


오늘의 (3/1) 말씀 묵상 (요한복음 10장14절, John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sheep and my sheep know me.
 
삯꾼과 선한 목자인 예수님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양 떼를 향한 태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삯군은 자신의 이익을 바라다가 이익이 사라질 때는 돌봐야 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사랑으로 양을 돌보기에 양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양도 목자를 잘 압니다.
곧 양과 목자 사이에는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양 떼를 자신의 생계 수단이
아니라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여기 ‘안다’는 (헬, 기노스코) 창세기에서 아담이 하와를 안다고 표현한 이래, 신뢰할 만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체험적인 지식과 다정한 친교의 지식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진실되고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양인 우리가 목자 되신 주님을 알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주신 말씀과 기도가 아닌지… 영적인 일에 힘쓰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