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5/13) 말씀 묵상 (역대상 29장12절, 1 Chronicles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Wealth and honor come from you; you are the ruler of all things.
In your hands are strength and power to exalt and give strength to all.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조상들을 보호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조상들에게 베푸신 것처럼, 지금도 당신의
백성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윗은 그렇게 완전성을 지니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가 찬양하고 있는
하나님은 모든 것의 정당한 소유자로서 최고의 통치권자이십니다.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이며,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 으뜸으로서, 부와 명예가 모두 그 분께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또 그 분은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만유를 움직이시며 감화시키십니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누린 풍요와 영광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꼐 보답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에 지니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윗은 그 놀라우신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그 분의 주권과 능력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경우, 찬양의 대상을 바르게 알 뿐만 아니라 왜 그 분을 찬양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깨달을 때에만 진정한 찬양을 드리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찬양을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깨달을 때에만 진정한 찬양을 드리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찬양을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십니까? 혹시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노력과 땀으로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화자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교만이요 착각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존귀한 분으로 여기고
경외하는 자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지만 그렇지 않고 교만한 자는 멀리 하십니다. 모든 것을 거두어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
전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고 찬양을 올려드시십시다.
오늘의 (5/12) 말씀 묵상 (시편 24편8절, Psalms 24: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Who is the King of glory?
The Lord strong and mighty, the Lord mighty in battle.
시인은 바로 앞 구절에서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신다’고 읊었습니다. 영광의 왕,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께서 행차하셨으니 문을 열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문을 의인화해서 말합니다. 문들에게
영광의 왕이 들어오시는 것을 기뻐 반기며 그케 그 입을 열어 환영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요구에 대해 성전 문을 지키는
자들이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시뇨?’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에 ‘강하고 능한 여호와,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다’라는 답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구원과 통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 안에 들어오시길 원하십니다. 그 전능하신 영광의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 중심에 좌정하여 계실 때, 성도는 세상의 온갖 환난과 역경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감히 그 분을 대적하고
이길 자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사탄이 강하다고 하지만 그 역시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잠시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내버려 두시고 계실 뿐입니다.
성도는 입으로만 주님을 ‘주인’ 또는 ‘왕’으로 인정할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주님의 전적인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시간과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어디든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을 받으면 그 때부터
그곳이 어디든 천국은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냥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면, 그 분이 우리 삶 중심에 오셔서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통치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분께서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시도록 주권을 내어드리십시다!
오늘의 (5/11) 말씀 묵상 (로마서 5장8절, Romans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세상 사람들은 상대의 모습에 따라 사랑을 베풉니다. 상대방이 잘 생겼거나 세상적인 지위가 높거나 가진 것이 많으면
일단 사랑을 쉽게 베풉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되면 쉽게 관계를 정리합니다. 이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의 조건에 상관없이 포용하고 받아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을 때,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죄의 대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놀라운 사랑입니다. 이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할 사랑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인이 영생을
얻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라도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 놀라운 구원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무리 상황과 환경이 어려워도 믿음의 사람은 오직 한 가지 구원을 얻은
것으로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가 고백했던 말씅이기도 합니다. (합 3:17-18)
혹시 오늘이나 근래에 근심이나 낙심되는 일이 있습니까? 억울한 일이 있습니까? 그래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기에 기뻐하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런 기쁨을 보이지 못한다면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의 은총을 누리며 기쁘게 살아가십시다!
오늘의 (5/10) 말씀 묵상 (이사야 40장7-8절, Isaiah 40:7-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리라.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s fall, because the breath of the Lord blows on them.
Surely the people are grass.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s fall, but the word of our God stands forever.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의 육체와 그 아름다움이 소멸하게 되는 원인을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자신의 미모와 재능으로 수많은 영광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스치고 지나가면 풀처럼
곧 시들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힘과 재능만
믿고 교만해져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택함
받은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지자는 인간의 육체와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하여 설명하기를, 인간의 육체는 풀과 같이 마르고 꽃과 같이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선언합니다. 후에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썩지 아니할 씨로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소멸해 버리는 다른 모든 유기체와는 달리 영원히 존재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은 일점 일획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마 5:18)
그러므로 영생을 원하는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5/9) 말씀 묵상 (골로새서 2장16절, Colosians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Therefore do not let anyone judge you by what you ear or drink,
or with regard to a religious festival, a New Moon celebration or a Sabbath day.
이 구절은 이단적 가르침을 다르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보족하기 때문에 모세의 할례와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의 규례들도 지키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믿는 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율법적인 형식이나 행위들은 그림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을 통해서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진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무관한 종교적인 규례를 따르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도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제도와 관습과 전통에 분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서 그 분의 그림자와 같은 규례를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위를
살펴 주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진 모습이 있다면 주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본질이 아닌 것이라 비본질적인 것이라면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가 되어야 할 공동체가 분열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공동체를 이간질 시키려는 사탄의 계략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분별하고 본질이 아닌 것은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오늘의 (5/8) 말씀 묵상 (신명기 5장16절, Deuteronomy 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as the Lord your God has commanded you,
so that you may live long and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in the land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10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계명은 하나님께 관한 계명이고
5-10계명은 사람들 사이에 관한 계명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관한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는 곧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은 외적인 표현이나
행위들뿐만 아니라 내적인 존경까지도 포함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자기들에게 가르친 선한 예법들을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정당성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또한 자연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외적인 번영과 장수가 계명을 잘 지키는 자들에게 약속되어진 축복입니다. 순종하는 자녀들은 종종 외적인
축복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 5계명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도
말합니다. 복음은 영적인 약속 뿐만 아니라 현세적인 약속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된 보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는 동기가 되고, 또한 격려가 되기도 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일은 어린이날, 그리고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더 부모님께
대한 효를 강조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입니다. 눈에 보이는 아버지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도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은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부모님을 공경하여 약속을 장수와 형통의 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진정한 믿음의 자녀가 되십시다.
오늘의 (5/7) 말씀 묵상 (욥기 10장12절, Job 10: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You gave me life and showed me kindness,
and in your providence watched ever my spirit.
성경에서 고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욥입니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육체뿐만 아니라 생명과 은혜를 주시고 또한 자신을
보살피스므로 영을 지켜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비록 이해가 되지 않는 어려움과 고통이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어도, 그는 하나님의 알 수 없는 은총과 섭리 그리고
보살핌응로 말미암아 그의 생명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으며, 평화와 번영을 맛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사람에게만 영을 주시고, 자신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다가 보면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억울한 상황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라도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과 그리고 알 수 없는 섭리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고난을 허락하시는 분도 주님이시요, 그 환난에서 건지실 수 있는 분도 주님이시요, 그것을 이기고 견딜 수 있도록 인내와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심을 기억하고 그 분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믿음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그 분께서 주시는 고난도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그 환난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5/6) 말씀 묵상 (마태복음 10장28절, Matthew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Do not be afraid of those who kill the body but cannot kill the soul.
Rather, be afraid of the One who can destroy both soul and body in hell.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그 어떤 핍박이 오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바로 그런 자들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세상의 박해자들이 아무리 믿음의
사람들을 박해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죽이는 것은 육체에 불과하지 결코 그들의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 영혼을
죽이는 것은 오직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공정하게 하십니다. 몸의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영혼의 삶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외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인격과 믿음, 성실함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십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의 평가는, 그 분의 심판은 공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로한 외모 때문에 무시당할 때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힘이 없어 어려움을 당하지만 때가 되면 선과 악 모두가 드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 날을 분명히
믿기 때문에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날을 기대하며 묵묵히 믿음의 순례의 길을 갑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믿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이다. 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창조가 되었기에 이 세상 마지막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은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은 영원한 세계로의 시작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자기 편한대로 살려고 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유혹과 갈등과 차별과 범죄가 끊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결코 돌고돌지 않습니다. 세상은 점점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영혼마저도 죽이시는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세상의 어떤 악과 권세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날마다 심판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믿음의 순례자가 되십시다.
오늘의 (5/5) 말씀 묵상 (마가복음 10장16절, Mark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And he took the children in his arms,
put his hands on them and blessed them.
아이들은 여자들과 함께 사회적으로 볼 때 또 다른 약자입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심으로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 나라에서는 약한 자가 소외되지 않음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아이들이
그 분에게 오는 것을 막는 제자들을 보시고 노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지 결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든 자녀든 각각에 맞는 목적을 가지시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우연히 태어난 자녀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과 관점에서 보면 절대로 그런 자녀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하는 것이나 귀찮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하나님 나라의 소중한 백성입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자신의
사명을 알고 감당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요 그런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입니다. 자녀는 미래의 꽃이라고도 하고 미래의 꿈나무라고도 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나갈
미래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런 귀중함을 알고 말씀 안에서 바르게 사랑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부모도 없고 완벽한 자녀도 없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께서 만드신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계십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그런 자녀를 키우는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이 되도록 기도하며 노력하십시다.
오늘의 (5/4) 말씀 묵상 (잠언 28장13절, Proverbs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He who conceals his sins does not prosper,
but whoever confesses and renounces them finds mercy.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이 땅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 되었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를 범하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죄를 범합니다.
또한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에 영적으로도 죽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죄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죄에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것처럼 죄는 자랍니다.
그렇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됩니다. 처음에 죄를 범할 때는 그래도 틀킬까봐 두렵고 떨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익숙해지면 오히려 스릴을 느끼기도 하고 더 큰 죄를 담대하게 저지르게 됩니다. 또한 죄에 대해 변명도 하며, 부인도
하고, 은혜하려고도 하고, 심지어는 죄에 대한 비난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게 되는 어리석을 일을 하게 됩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다윗도 자기 죄를 숨기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마음이 쫓기고 뼈가 녹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환자가 자기 병을 감추고 있는 동안에는 치료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병은 점점 깊어갑니다. 고치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자기 죄를 자복하고 다시는 죄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자들은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즉 긍휼히 여김을 받아, 그들의 양심은 평안을 얻으며, 멸망에서 건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었든지 즉시 그 죄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회개하며 그 죄를 버림으로 하나님의
사죄하시는 은혜와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삶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로 하여금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합니다. 은혜 안에 거하는 삶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못할 죄가 있겠습니까? 그 분은 누구라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그 죄를 사하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그 분의
약속입니다. 그러니 무의식적이든 고의적이든 죄를 범한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고하고 긍휼하심을
받고 평안안 삶을 누리고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