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4/5) 말씀 묵상 (누가복음 7장45절, Luke 7: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You did not give me a kiss, but this woman, from the time I entered,
has not stopped kissing my feet.
본문의 무대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식탁 교제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행동과 시몬의 행동을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시몬이 예수님께 해야 할 손님 접대 행위를 그 여인이 했다는 것입니다. 시몬이
해야 했던 행동은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것, 입맞춤으로 환영하는 것, 머리에 감람유를 붓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예수님을 홀대했던 반면 여인은 시몬이 하지 않는 것을 예수님께 분에 넘치게 했습니다.
여인은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았고, 주님의 발에 입 맞추기를 계속 했습니다. 시몬은 부담
없이 사용하는 감람유조차도 예수님의 머리에 붓지 않았지만, 여인은, 옥합에 담긴 귀중한 향유를 주님의 발에 다
부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는 더러운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의 지를 회개합니다. 혹시 아직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미루지 말로 지금 당장 진정으로 회개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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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4) 말씀 묵상 (누가복음 4장18절, Luke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The Spirit of the Lord is 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preach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freedom for the prisoners and recovery of sight for the blind,
to release the oppressed,’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희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 곧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 구절은 전형적으로 메시야가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한 말씀으로 이사야서 61:1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자신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렸던
메시야임을 알리고자 일부러 그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평강과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오심으로 은혜의 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뜻에 따라 경건하게 살아가며, 이 세상 것들에 눈을 돌리지 않는 자들에게는 복음,
자유, 눈 뜸, 해방이 선언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는 가난과 억압과 노예와 어두음과 미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을 다스리시게 되면, 좌와 사망의 포로가 되어 저주와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해방이 됩니다.
세상의 썩어질 것들, 즉 우상숭배, 자기 사랑, 재물, 염려, 미움, 분열 등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에서
해방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까지
이런 천국의 은혜를 누리며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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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3) 말씀 묵상 (요한복음 6장29절, John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Jesus answered,
‘The work of God is this; to believe in the one He has sent.’
예수님은 찾아온 무리에게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묻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무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셨습니다.
영생하는 양식을 얻으려면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놀랍고 위대한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적 민감성을 키워야 합니다. 영적인 안목을 갖지 못해
곤란을 겪은 적은 없습니까? 영적인 안목을 더 예민하게 하기 위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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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2) 말씀 묵상 (요한복음 4장14절, John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나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but whoever drinks the water I give him will never thirst.
Indeed, the water I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눈에 보이는 우물물은 마셔도 다시 목이 마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생의 물, 곧 생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여인은 주님께 생수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자신의 가난한 마음을 토로한 것입니다. 아직 그녀는 우물과 생수를 잘 분간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생수를
맛보기 원한다면 예수님 앞에 가난한 심령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만 하면,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팔복의 첫 번째인,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감으로 구원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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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 말씀 묵상 (요한복음 11장25절, John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중 으뜸 되는 기적은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려서 무덤에서 걸어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회생의 기적은 부활의
확실성을 믿게 하시려는 의도에서 주신 것입니다. 즉, 믿는 자는 장차 부활할 것임을 증명해 보이신 것입니다.
나사로의 회생 기적은, 첫째,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말씀이 응해진 경우입니다. 분명히 나사로는 믿고
죽은 경우입니다. 그에게는 장차 부활이 있을 것임을 확증해 보이신 것입니다.
둘째, 믿고 죽은 자에게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란 말씀도 하셨는데, 이는 믿고 죽은 사람들은 더 이상 영적으로
죽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물론 믿는 자에게 육체적인 죽음은 있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수면 즉
잠자는 것입니다. (고전 15:18, 살전 4:13, 4:15)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끝날까지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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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31) 말씀 묵상 (이사야 53장5절, Isaiah 53:5)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up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
이사야 선지자는 종이 당한 고난의 의미를 선포하면서 ‘그’와 ‘우리’를 대조시킵니다. 우리는 종이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징계를 당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림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종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상함을 당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비뚤어진 성향과 죄악 때문입니다.
이제 선지자는 종의 고난이 가져다줄 좋은 결과들을 제시합니다. 반역의 결과로 주어진 것은 상처와 징계였지만
종의 고난은 우라에게’ 평화’를 가져오고 우리의 아픈 상처를 ‘치유’했습니다. 종은 스스로 ‘우리’의 고난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를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는 많은 놀라움과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십자가를
사랑하고, 그 십자가를 자랑하면,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가 매순간 우리를 압도할 것이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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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30) 말씀 묵상 (요한복음 13장15절, John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do as I have done for you.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후,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이는 예수님이 행하신 세족의 의미를 바로 알고 그 분이 행하신 일을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본은
실천적 섬김입니다. 그냥 발을 씻어 주라는 것이 아니라 발을 씻어주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가르치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아니요 오직 섬김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섬기는 곳에 있습니다. 그런 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먼저 우리에게 사랑과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섬기고 사랑할 때,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의 보냄을 받았는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섬김을 동일하게
행하는 진정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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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9) 말씀 묵상 (마가복음 14장9절, Mark 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erever the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오늘은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드린 사건이 있는 날입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과 수치심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담하게 비싼 향유 한 병 모두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렸습니다. (향유 한 병은 1년 동안의 품삯에 해당) 그리고는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에게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주님을 향한 사랑의 충동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의 불평과 비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 일을 주님은 칭찬하시며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 일도 증거하로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교만과 허울과 체면의 옷을 벗어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향한 섬김은 상대적이 아닙니다. 그저 따라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에 느껴지는 대로
하면 됩니다. 내가 귀히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헌신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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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8) 말씀 묵상 (마가복음 12장44절, Mark 12: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즉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They all gave out of their wealth;
but she, out of her poverty, put in everything-all she had to live on.
예루살렘 입성 후 셋째 날에, 예수님은 성전 연보궤 앞에 앉으셔서 그들이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셨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려고 전국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또한 그들 중에는 많이 헌금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 예수님이 크게 칭찬하신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과부의 마음 속에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진 것이 없고, 내세울 것이 없어도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의 헌신을 격려하십니다. 헌금은 양이 아닌 질로, 헌금한 사람의 마음 가짐과 헌신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는 가난하고 연약한 성도들의 피와 땀과 노력과 눈물의 헌신으로 인해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있는지 살펴보고 진정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행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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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7) 말씀 묵상 (마가복음 11장3절, Mark 11: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If anyone asks you, ‘why are you doing thins?’
tell him, ‘The Lord needs it and will sent it back here shortly.’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웅이나 왕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한껏 낮추신 겸손의 왕이십니다.
그 겸손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사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십니다. 나귀 새끼는 다윗 왕가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이미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었던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교회는 예수님의 겸손과 평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가 권력과 힘으로, 곧
영광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면 필연코 타락하게 됩니다. 교회가 힘을 가지게 되면
부태하게 된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 또 주변을 통해서 알 수 있기에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역사상 교회 이름을 위한 선교나 혹은 교회의 이득을 위해 돈과 권력을 가까이 하고 종교 재판이나 혹은 정치에
개입하여 행하는 여러 불의한 일들을 다시는 재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위치에 있든지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제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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