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21) 말씀 묵상 (이사야서 43장21절, Isaiah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the people I formed for myself that they may proclaim my praise.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지었다’는 말은 다른 피조물의 창조에도 적용되는 포괄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특별한 의미로서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
선택된 우리들 역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선택해 주신 목적을 깨닫고 온전히 그 분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함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진실한 예배를 받으시고 찬송을 받으시려고 우리에게 날마다 새날을
주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비록 어제는 바른 예배, 바른 기도생활을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오늘은 하나님을 찾아 만나기를 즐거워하며,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송하는 삶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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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0) 말씀 묵상 (이사야서 43장19절, Isaiah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See, I am doing a new thing! Now it springs up;
do you not perceive it?
I am making a way in the desert and streams in the wasteland.
절망 속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작은 공동체 유다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희망의 날은 결코 동터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 상태로 있는 초라한 유대 공동체를 위해 전혀 새로운 일,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때를 떠올리시며, 바다 가운데 길을 내어 지나가게 하셨던 일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그 후 40년간 길 없던 광야를 거쳐 결국 약속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을
회상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것이며,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새로운 길 즉 광야 같은 인생에 길을 내어 주시고,
사막 같은 건조한 삶에 강을 내어 주실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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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9) 말씀 묵상 (출애굽기 15장2절, Exodus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The LORD is my strength and my song; he has become my salvation.
He is my God, and I will praise him,
my father’s God, and I will exalt him.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거룩한 힘과 영적 노래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대적의 땅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원수가 죽음으로 무기력하게 되기 전까지는
구원의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행하신 구권을 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변경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외칩니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진정한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 나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여
찬양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술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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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8) 말씀 묵상 (출애굽기 33장19절, Exodus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And the LORD said, ‘I will cause all my goodness to pass in front of you,
and I will proclaim my name, the LORD in your presence.
I will have mercy on whom I will have mercy,
and I will have compassion on whom I will have compassion.’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의
요청을 거절하셨습니다. 부정한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그 분의 거룩하신 성품을 훼손하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그 분의 영광을 보면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분의 선함을 나타내겠고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겠으며 긍휼을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처럼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우리들 역시 참되고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 분의 긍휼하심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도라는 열쇠가 있습니다. 이 열쇠로 막힌 문제의 문을 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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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7) 말씀 묵상 (누가복음 5장27-28절, Luke 5:27-28)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After this, Jesus went out
and saw a tax collector by the name of Levi sitting at his tax booth. ‘Follow me,’ Jesus said to him.
and Levi got up, left everything and followed him.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세리 레위는 영적, 도덕적으로 더럽고 부정한 죄인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나병 환자와 같이 영적으로 부정한 자였으며, 죄인이기에 중풍병자와 같이 죄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부르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리의 죄인됨의 정도와 깊이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정한 죄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주님께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셔서 제자 삼으시고, 잔치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처럼, 자신의 힘으로는 죄와 진노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함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을 찾고 불러서 그들로 하여금 은혜를
얻게 하십니다. 그런 은혜를 알고 감사할 뿐만 아니라 전하고 나누는 제자로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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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16) 주일입니다.
오늘은 성삼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예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말씀의 살아있는 역사와 마음에 새겨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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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5) 말씀 묵상 (누가복음 4장18절, Luke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The Spirit of the Lord is 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preach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freedom for the prisoners and recovery of sight for the blind,
to release the oppressed,
예수님이 이 가르침을 이사야 61:1-2절에서 인용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희년(안식년)에
대한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 속성인 안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 곧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 구절은 전형적으로 메시아가 오셔서 할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만을 섬기며 그 분의
뜻에 따라 경건하게 살아가며 이 세상 것들에 눈을 돌리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 자유, 눈뜸, 해방이
선언됩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가난과 억압과 노예와 어두움과 미움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님과 천국을 불신하는 자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평강과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 분이 오심으로 은혜의 해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천국의 은혜를 누리며 복음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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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4) 말씀 묵상 (누가복음 4장4절, Luke 4: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Jesus answered, ‘It is written;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이 시험은 예수님이 마지막 아담 (둘째 아담)의 신분과 자격으로 받은 것이르모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선악과 시험과 유사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 죄를 범했으나, 예수님은 타락의 결과를 가장 생생하고 극적으로 보여 주는 불모의 땅
광야에서 사탄과 맞서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서 40일간 주리고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사람됨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림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만 경배하며 살아야 함을 분명히 고백하셨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떡과 같은 것으로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시험하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으로 시험을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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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3) 말씀 묵상 (누가복음 2장52절, Luke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And Jesus grew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en.
지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이 세상의 일반 원리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한 예수님이
지혜롭게 하신 일 중 하나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받드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부모가
예수님의 메시아직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율법을 따르신 것이었으며 지혜로운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지혜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지혜라는 말은 십자가의 복음이 지혜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는 십자가를 본받아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삶은 하나님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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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2) 말씀 묵상 (에베소서 5장17절, Ephesians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Therefore do not be foolish,
but understand what the Lord’s will is.
사도의 이 권면은 악한 세상에서 살 때 어떻게 하면 세월을 아끼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적 지각력을 가진 신자가 주의 뜻을 이해할 때 그런 삶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여기 ‘이해하다’는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정확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의 뜻에 어긋한 삶은 후회 뿐인, 잃어버린 세월이 될 뿐입니다.
바울이 앞 절에서 성령 충만을 촉구했던 이유는 성도들이 지혜 가운데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여 매일의 생활에서 주의 뜻을 이해하고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려면 성령의 내적 충만을
힘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기 우해 세상의 없어질 것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을 찾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수를 주시는 성령께 자신의 전 삶을 의뢰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의 삶을 살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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