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1/10) 말씀 묵상 (시편 40편13절, Psalms 40:13)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Be pleased, O LORD, to save me; O LORD; come quickly to help me.
시인은 감히 하나님께 그를 대적들로부터 구하시고 도와주시기 위해 서두르실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경한 요구가 아니라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는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도우시고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신앙인의 강한 믿음을 보여 줍니다. 때때로 시편 기자들은
자주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면서 ‘언제까집니까?’라고 탄식하기도 하고 여기서처럼
신속한 구원을 직접 요청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의 아들들은 빛의 자녀들인 우리보다 더 지혜롭고 강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조롱은 물론 핍박을 피할 수 없게 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이 시급하게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 힘을 다해 이 영적 전투에 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건져주실 것입니다. 미루지 말고 지금 하나님께 구하십시다.
오늘의 (11/9) 말씀 묵상 (시편 40편11절, Psalms 40:1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지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Do not withhold your mercy from me, O LORD;
may your love and your truth always protect me.
아마도 시인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극한의 상황에서 구원을 위해 부르짖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요청은 때로는 잔잔하게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열렬하게 부르짖는 것으로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인자와 진리로 보호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과거의 죄악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머리를 들 수도 없고, 많은 죄 때문에 낙심하는 처지에 있을지라도…결코 포기하지
않고 열렬하게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우리 자신의 범죄 사실과 반복적으로 범해진 죄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께 나아가기가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죄는 하나님 외에 어디에서도 해결 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면목이 없어도 우리는
죄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거 그 분의 긍휼과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기뻐하시고 인자를 베풀어 주십니다. 참된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다!
오늘의 (11/8) 말씀 묵상 (시편 40편2절, Psalms 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He lifted me out of the slimy pit, out of the mud and mire;
he set my feet on a rock and gave me a firm place to stand.
하나님은 시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려 주시며, 반석 위에 두셔서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힐
인생의 웅덩이에 빠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도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사실 시인처럼
끈질기게 기다리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면서 조급하게 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악한 세상을 멀리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위험한
상황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가 극심한 궁지와 역경에 몰리게 되더라도 그 분을 의지하며 간구하면
하나님은 그 수렁에서 건져 내셔서 반석 위에 우리를 세워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끝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때로는 우리가 느끼지에
더딜지는 몰라도 반드시 응답하여 주심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도 훈련입니다.
오늘의 (11/7) 말씀 묵상 (시편 39편7절, Psalms 39: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But now, LORD, what do I look for? My hope is in you.
‘주여, 그러니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 있습니다’ 질병에 걸린 사람은 마음도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오늘 시인은 어쩌면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질병에 걸려 소망이 없는 상황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질병 가운데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오직 그분에게 신뢰의 고백을 하며
치유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이러한 태도와 기도는 질병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것입니다.
소생의 가능성이 없는 치명적인 질병은 우리를 낮아지게 만듭니다. 그럴 때 자칫하면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질병을 통해 우리를 낮추시고 인생의 헛됨을 알게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반드시 그 질병이 낫지는 않더라도, 그 질병을 통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목적지에는 분명히 도달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소망의 끈을 놓지말고 기도하십시다.
오늘의 (11/6) 말씀 묵상 (시편 37편5절, Psalms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do this;
시인은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라. 그리하면 그가 행하시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맡기다’라고
번역되는 원어 (갈랄)는 ‘돌을 굴린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가려는 길을 여호와께 굴려 드리라는 말은
그 길이 돌처럼 굴러가는 시작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의미입니다. 그 분을 의지하면 가려는 길의 종착점까지
하나님이 행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길의 시작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면 그 분이 이루실 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성도는 세상이나 악인의 부요에 동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실로 식물을 삼으며 인생을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 앞에서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오늘의 (11/5) 말씀 묵상 (시편 31편19절, Psalms 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How great is your goodness, which you have stored up for those who fear you,
which you bestow in the sight of men on those who take refuge in you.
사전에 ‘은혜’는 ‘고맙게 베풀어 주는 혜택이나 신세’로 정의되어 있지만 성경에서는 은혜를 언약적인
관점을 떠나서는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 주는 고마운 것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관계를 맺으신 사건 자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언약과 함께
은혜라는 말이 사용되는 경우, 언약을 맺은 두 당사자가 그 언약에 대해서 신실하게 지켜야 하는 자세가
강조됩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에 따라 각종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이 단어가 인간에게 적용되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고 한결같이 지키고 사랑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 자신에게 피하는 자들에게 이런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그 분께 감사하며 은혜를 갚아 가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오늘의 (11/3) 말씀 묵상 (요한복음 15장12절, John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My command is this;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you.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는 모습으로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계명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되어
있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공급받아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충분하게
공급받았기에 얼마든지 다른 이에게 사랑을 흘려 보낼 수 있습니다. 사랑이 충만할 때 자연스럽게
기쁨이 넘칩니다. 제자들이 맺어야 할 열매 중 최고의 열매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됨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표지입니다.
형제자매들을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주님과 같은 사랑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그 분의 은혜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먼저 은혜를 넘치도록 받기
위해 내가 할 일을 무엇입니까?
오늘의 (11/2) 말씀 묵상 (요한복음 15장7절, John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given you.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서 얻는 열매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예수님은 좌절에 빠지기 쉬운 제자들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응답받는 기도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물론 기도 응답을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제자들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언제나 상호관계이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 분의 생명을 공급받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모든 운명이 주님과 함께하는 데 달려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기도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미신이나 부적과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믿음이 없이는 응답이 안 됩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한 기도도 응답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아니요,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 원대로가 아닌 하나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보다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좋은지부터 묻는 삶을 사십시다.
오늘의 (11/1) 말씀 묵상 (요한복음 15장4절, John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Remain in me, and I will remain in you.
No branch can bear fruit by itself, it must remain in the vine.
Neither can you bear fruit unless you remain in me.
그리스도와 믿는 자의 하나 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음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습니다. 나무와 가지와의 관계, 또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바로 ‘안에 거하다’는 표현입니다. 성도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성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행위(doing)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being)의 문제를 의미합니다. 가지는 나무의 진액을 받아야 생명이 유지되고
열매도 맺을 수 있기에 반드시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을 연합할 수 있는데 이것은 영적인 연합입니다. 성령 안에서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신령한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누리며 변화하게 됩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과 연합한 삶을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