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0/11)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You are my friends if you do what I command.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지켜야 할 새 계명인 친구를 위한 사랑을 말씀하신 후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당신의 친구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친구라’는 ‘부르다, 일컫다’는 뜻의 완료형 동사로 전부터 그렇게 계획하셨고,
내내 그렇게 여기시고, 앞으로도 그렇게 대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으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주님으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았기에
제자들 또한 마땅히 새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이야말로 가장 큰 계명이요
그렇게 하면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요 주님의 친구가 됩니다.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불법을 행하면 진정한 친구가 되지 못합니다.  사랑을 행함으로 주님의 친구가 되는
영광을 누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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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0)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4:9)

너희는 내게 듣고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Whatever you have learned or received or heard from me,
or seen in me-put into practice.
And the God of peace will be with  you.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하는데, 분명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바울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를 부르시고 보내신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평강 즉 내적인 고요함입니다.
 
언행일치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주께서 명하신 길로 가게 됩니다.  바울 자신이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길로 갔던 것처럼 자신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도 같은 길을 감으로,
자신이 로마에 포로로 있지만 두려움이나 염려 없이 평안을 누리는 것처럼, 그들도 
세상이 주는 박해 속에서 평강을 누릴 것이라고 위로합니다.  
듣고 배우고 받고 듣고 한 것을 행함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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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5)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and in Him you have been made complete,
and He is the head over all ruler and authority.
 
바울 사도는 잘못된 가르침을 ‘철학과 헛된 속임수’라고 표현하면서 사람의
전통을 주의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 전통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적 권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외의 계시와 권위를 진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기에 그분이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 외의 가르침은 모두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닙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모세의 율법 아래에서 육체의 할례만 받았던 구약의 
이스라엘과는 다르게, 비록 죄와 무할례로 죽었던 이방인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부활에 참여하는 새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고 예수님 만으로 충분하기에 거짓 교리에
넘어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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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4)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We give thanks to God,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 praying always to you.
 
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반박하기 위해 쓴
이 편지에서 바울은 수신자를 밝힌 다음 자신이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대상은 단순히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주 계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입니다.’  ‘주 예수’는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신 신적인 분입니다.
 
사도는 ‘감사한다’는 동사를 현재 시제로 사용해서 어떤 한 순간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는 이 편지를 쓰는 순간에
로마의 포로로 지내는 신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인해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복음의 씨앗을 뿌린 여러 곳에서 싹이 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지속적으로 감사할 뿐만 아니라 기도하면서
복음의 씨를 뿌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뿐만 아니라 그 분의 더 큰
역사를 경험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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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3)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Revelation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He who overcomes will thus be clothed in white garments,
and I will not erase his name from the book of life,
and I will confess his name before My Father and before His angels.
 
소아시아의 7 교회들 중, 다섯번째인 사데교회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들은 명목상 살아 있을 뿐 실상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임을 말씀하신 다음
예수님은 그들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기에 이전에 받고 들은 복음으로
돌아가라고 처방하십니다.
 
만약 그들이 복음으로 돌아가면, 세 가지를 약속하십니다.
첫째 흰 옷을 입을 것이고, 둘째 이기는 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셋째, 그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신다는 것입니다.
 
‘흰옷’은 성도들이 입을 세마포로 순결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즉 신앙의
순결을 지키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말입니다.  점점 더 어두워져 가는 세상에서
끝까지 순전한 믿음과 온전한 행실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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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9/22)

오늘은 거룩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깊어 가는 가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를 통해
풍성한 은혜와 자비를 얻어 새롭게 거듭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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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1) 말씀 묵상 (시편/Psalms 147: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Great of our LORD and abundant in strength;
His understanding is infinite.
 
기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자비로우심을 동시에 찬양합니다.
그분은 별의 수를 세시며 그 별들의 이름을 부르신다고 고백하니 그분은
지혜가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지혜의 근본이시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그분이 당신의 백성 중 한 사람도 잊지 않으시고
잃지도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의 이름도 아시며 우리가 가는
길도 아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그분께 찬양을 드림이 마땅합니다.
 
신앙의 활력은 그저 머리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그분의 역사를 체험할 때 옵니다.  그러면 그분의 위대하심을 더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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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0) 말씀 묵상 (시편/Psalms 147: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He heals the brokenhearted
and binds up their wounds.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시로, 이 낱말이 주제라기보다는 명령형
찬양문 구실을 합니다.  이 구절에서 기자는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특징적으로
고백하는데,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분’, 그리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분’이라고 찬양합니다.
 
‘상심한’의 의미는 ‘깨지고 산산히 부숴져 더 이상 제구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들 조차도 하나님께서 고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바벨론 땅으로 잡혀가 70년 동안 비참한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을 재건하게 되었지만 그들 마음 속에는 회복하기
힘든 상처가 많았었는데 하나님이 상처를 싸매시고 고쳐주셨음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위로하고 고치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시기에
그분께 나아가야 진정한 고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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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9) 말씀 묵상 (시편/Psalms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When you shall eat of the fruit of your hands,
You will be happy and it will be well with you.
 
지혜 시편으로 분류되며 ‘성정에 올라가며’라는 표제가 있는 이 시에서
시인은 복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연관을
짓습니다.
 
그 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바로 자신이 수고하고 일한 대가를 누리는 것입니다.
‘형통한다’는 단어는 ‘좋은, 즐거운, 바람직한, 선한’의 뜻으로 실제적인 이익과 함께
기쁨, 즐거움 등의 정서적인 유익, 윤리적으로는 선한 가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런 실제적인 복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조금 일하고 큰 결실을 얻는다거나, 일하지 않고도 수입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수고한 만큼 얻는 것이 무슨 큰 복인가 여길 수 있지만, 수고가 헛되지 않고
일한 만큼 수확할 수 있는 것이 복임을 알고 여호와을 경외하며 감사하며
늘 형통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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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8) 말씀 묵상 (시편/Psalms 118: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From my distress I called upon the LORD;
the LORD answered me and set me in a large place.
 
‘제의 시편’으로 분류가 되는 이 시에서 기자는 고통에서 구원받은 경험을
감사하며 노래합니다.  ‘고통’의 일차적인 뜻은 ‘비좁은 곳’으로 여호와께서
계시는 ‘넓은 곳’과 명확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그가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응답하사 넓은 곳에 세우셨다고 합니다.  이 말은 숨막히는 압박의 좁은
곳에서 벗어나 탁 트인, 자유로운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로서 연약한 양의 어려움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시는
인자하신 분이심을 믿는 자는 아무리 고통 가운데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의심하면 응답받지 못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인자하심과 응답하심을 믿고 어떤 환경이든 두려움없이
담대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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