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4/13)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후서 3장10절, 2 Thessalonians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For even when we were with you, this we commanded you,
that if any would not work, neither should he eat.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일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극단적인 종말론적 신앙에 미혹되어 정상적인
삶에서 이탈한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 이단들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모여서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단호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규모없이 행하는 자들과 바울이 전한 
유전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가르칩니다.
 
바른 신앙은 자신의 게으름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면서 주위에 본이
되는 신앙입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은 조용히 일하라.  일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진리를 알고 깨달아 부지런히 일하며 이 땅에서 수고의 땀으로 최고의 결실을 거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공동체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고, 풍성하게 또한 주님의 위엄과 영광이 나타아야
합니다.  이단들의 달콤한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지 말고 건전한 재림 신앙을 가지고 준비하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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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2)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5장8절, 1 Thessalonians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But since we belong to the day, let us be self-controlled,
pouring on faith and love as a breastplate, and the hope of the salvation as a helmet.
 
성도는 어두운 곳을 밝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도에게 부여된 특권이자 책무입니다.  또한 언제
주님께서 재림하실 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영적으로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자는 것과 취하는 것은 모두 ‘밤’에 속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 성도들은 ‘낮’에 속해
있습니다.  여기서 ‘낮’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세계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정신을 차리고’는 군대
용어로 군인들이 밤에 깨어 보초를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믿음과 사랑의 호심겸, 구원의 소망의 투구로
무장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삶임을 기억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지구촌 도처에서 재난과 난리의 소식이 들립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보며 재림이 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재림하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늘 깨어서 기다리고 있습니까?  지금이야말로 다시 우리의 믿음 상태를 돌아보고 깨어 낮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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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1) 말씀 묵상 (이사야 60장1절, Isaiah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Arise, shine, for your light ha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rises upon you.
 
하나님의 백성은 영적으로 암흑천지와 같은 세상에서 빛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빛을 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은
아무런 빛을 발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 이유는 빛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부터 빛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과 우리에게 사용되는 빛은 다른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빛을 내는 분이시지만 우리는 그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빛입니다.  마치 태양과 달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므로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빛과 같은 존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귀한 인생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어두운 세상 가운데 영롱한 별과 같은 존귀한 존재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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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0) 말씀 묵상 (이사야 40장15절, Isaiah 40: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Surely the nations are like a drop in a bucket;
they are regarded as dust on the scales; he weighs the islands as though they were fine dust.
 
선지자는 바벨론 신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하나님의 비길 데 없는 특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민족들은 마치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 물동이 밖으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하다고.  또한 모든 민족들이 
아무리 뭉친다고 해도 그것은 물건을 저울에 달 때에 작은 티끌이 저울 눈금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그리고 바다에 떠있는 큰 섬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이것들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이 미미할 것이고 
하나님께는 미세한 먼지와 같이 가벼운 것이 된다고.  이와 같이 하나님의 눈 앞에는 모든 민족들이 무한히 작은 것이므로
그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은 그 분에게 있어서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세상은 이와 같이 하찮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런 비길 데 없는 하나님이 사랑을 기억하여,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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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9) 말씀 묵상 (이사야 40장1절, Isaiah 40: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Comfort, comfort my people, says your God.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 말씀은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로 지쳐 있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음성이었습니다.  바벨론 여러 강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우는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닿도록 정답게 위로의 말씀을 들려주려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회초리로 때린 뒤, 아파 고통하는
자녀들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부모처럼 가슴 아파하십니다.  그렇게 위로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들의 죄악 역시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죄에 대해 내려졌던 훈련의 때는 지나갔고 이제는 회복의 때,
위로의 때가 온 것입니다.
 
위로의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삶에 지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짐, 죄의 짐,
두려움과 죽음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엑 참된 위로가 필요함을 아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때가 되면 죄악을 사하시며
동정 어린 마음으로 자기 백성을 껴안아 주실 것입니다.  그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고 낙심치 말고 일어서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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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8) 말씀 묵상 (시편 119편153절, Psalms 119: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Look upon my suffering and deliver me,
for I have not forgotten your law.
 
시편 저자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편을 있는 그대로 봐 주실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시는 시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가 그렇게 외치고 있는 근거는 바로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잊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려울 때 우상을 찾거나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잊지 않고 지키고 있으니 긍휼을 베푸사, 개입하사 건져달라는 것입니다.
 
고통과 환난 중에 있는 때, 하나님의 자녀가 할 태도는 많은 양의 기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으니 도와주실 것을 진심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행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자는 그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백성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르짖을 때, 사소한 일이라고 넘겨버리지 않으십니다.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관심을
기울이사 도와주십니다.  때로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만 때로는 그 문제를 이겨낼 수 있도록 믿음과 지혜와 용기와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 부끄럽지 않도록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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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7) 말씀 묵상 (이사야 32장15절, Isaiah 32:15)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till the Spirit is poured upon us from on high,
and the desert becomes a fertile field, and the field seems like a forest.
 
구원시대는 영을 부어 주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 ‘영’은 살아나게 하는 힘을 말합니다.  그 영은 위에서부터가
보여 주듯이 하나님의 영입니다.  선지자는 우리에게 부어주실 영을 말하면서 마음의 갱신이 아니라 자연의 변혁을
언급합니다.  심판과 폐허의 극복은 위로부터 영이 우리에게 부어짐으로만 가능합니다.  광야에 싹이 돋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다는 이미지는 종말론적 소망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광야가 과수원이
됩니다.  과거에 무시되었던 공의와 정의가 광야와 과수원에 항구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과수들이 광야에서
자라고, 과수원이 울창한 숲처럼 될 것입니다.
 
성령님은 치유의 영이요 회복의 영이십니다.  신앙생활은 성령님과 함께 그 분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때, 그 분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육체 그리고 영을 만지십니다.  오늘도 주님께 
나아가 성령으로 충만케 채워주시길 간구하시고 회복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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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6) 말씀 묵상 (누가복음 16장10절, Luke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Whoever can be trusted with very little can also be trusted with much,
and whoever is dishonest with very little will also be dishonest with much.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충성입니다.  세상은 부와 명성과 결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것과
상관없이 충성으로 평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한 자세가 큰 것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말하는 바와 같이, 각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가 다를지라도, 최종 판단 기준은
충성입니다.  현재 주어진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지 않으면, 장래에 하나님 나라의 그 어떤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악한 판단 기준에 의해 교만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현재 하나님이 주신 이레 충성함으로 참되고 영원한 부를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 동안 주를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때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이 기쁘게 맞아 주실 것입니다.  그 날을 사모하며 기대하며 묵묵히 충성하며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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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5) 말씀 묵상 (누가복음 7장45절, Luke 7: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You did not give me a kiss, but this woman, from the time I entered, 
has not stopped kissing my feet.
 
본문의 무대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식탁 교제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행동과 시몬의 행동을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시몬이 예수님께 해야 할 손님 접대 행위를 그 여인이 했다는 것입니다.  시몬이
해야 했던 행동은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것, 입맞춤으로 환영하는 것, 머리에 감람유를 붓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예수님을 홀대했던 반면 여인은 시몬이 하지 않는 것을 예수님께 분에 넘치게 했습니다.
여인은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았고, 주님의 발에 입 맞추기를 계속 했습니다.  시몬은 부담
없이 사용하는 감람유조차도 예수님의 머리에 붓지 않았지만, 여인은, 옥합에 담긴 귀중한 향유를 주님의 발에 다
부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는 더러운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의 지를 회개합니다.  혹시 아직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미루지 말로 지금 당장 진정으로 회개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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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4) 말씀 묵상 (누가복음 4장18절, Luke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The Spirit of the Lord is 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preach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freedom for the prisoners and recovery of sight for the blind,
to release the oppressed,’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희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 곧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 구절은 전형적으로 메시야가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한 말씀으로 이사야서 61:1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자신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렸던
메시야임을 알리고자 일부러 그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평강과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오심으로 은혜의 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뜻에 따라 경건하게 살아가며, 이 세상 것들에 눈을 돌리지 않는 자들에게는 복음,
자유, 눈 뜸, 해방이 선언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는 가난과 억압과 노예와 어두음과 미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을 다스리시게 되면, 좌와 사망의 포로가 되어 저주와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해방이 됩니다.
세상의 썩어질 것들, 즉 우상숭배, 자기 사랑, 재물, 염려, 미움, 분열 등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에서
해방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까지
이런 천국의 은혜를 누리며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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