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28) 말씀 묵상 (누가복음/Luke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But woe to you Pharisees!
For you pay tithe of mint and rue and every kind of garden herb
and yet disregard justice and the love of God;
but these are the things you should have done without neglecting the others.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십일조 드림을 인정하시면서 더하여 사랑의 정신도
버리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십일조 제도뿐만 아니라 사랑과 공의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십일조의 원래 목적이 토지를 받지 못한 레위인들을 위할 뿐만
아니라 (공의), 가난한 고아와 과부를 위한 것이기 (사랑) 때문입니다.
외적인 종교 행위도 있어야 하겠지만 내적인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과
공의가 없다면 하나님께 기억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화가 됩니다.
위선(외식)을 버리고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6/27) 말씀 묵상 (누가복음/lUKE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죄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I tell you that in the same way, there will be more joy in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than over ninety nine righteous persons
who need no repentance.
예수님의 잃은 양 비유에 대한 해석으로 비유 속의 목자는 죄인을 영접하시고
식탁 교제를 나누시는 예수님을 비유하며, 의인을 비유하는 99 마리의 양은
아마도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이라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신다고 단언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있어서 죄인들은 사실상 투명인간과 같은 존재로
하나쯤은 없어져도 그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문이 닫히면 그 누구도 열 수가 없을 때가 옵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들으면 미루지 말고 즉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6/26)말씀 묵상 (하박국/Habakkuk 2:4) 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Behold, as for the proud one, his soul is not right within him;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하나님과 하박국 선지자 사이의 계속된 논쟁에서 하나님은 남 유다를 침공하는
바벨론이 교만으로 인해 심판을 받을 때에도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인해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후반절은 사도 바울이 ‘이신칭의’의
구원론을 변증하면서 로마서 1:17절에서 인용합니다.
의인이 구원받는 것은 믿음 때문이지만 여기에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의인의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영혼과 육체의 힘을
다 빼고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겸손한 사람이 구원을 얻고 반드시 삽니다.
자신을 믿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교만한 사람은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의인으로 바로 서서 구원을 얻고
영원히 사십시다.
오늘의 (6/25)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7: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Do not judge according to appearance
but judge with righteous judgement.
예수님의 가르침의 출처에 대한 말씀이 율법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하는데
주님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율법을 그들이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하셨습니다.
그 근거로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점은 외모를 보고 판단했다는 것인데 이는 눈에 보이는 증거, 육체로
행하는 율법의 준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대안으로 공의로운 판단을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공의로운 판단을 하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보이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 외적 조건이 아니라
중심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눈이 뜨여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지혜를 얻어야 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외적 조건이나 자기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는지…
오늘의 (6/24) 말씀 묵상 (에베소서/Ephesians 3:16-17)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that He would grant you according to the riches of His glory,
to be strengthened with power through His Spirit
in the inner man (v.16)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이 그들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강건은 강해짐을 의미하는 말로 이
강해짐의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기준에 따라 강건함이 주어진다는
것이고 방식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건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도의 강건함을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거주하시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외적인 육체의 강건함보다 보이지 않는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내면의 강해짐은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기에 늘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약한 내면이
치유되고 회복되어 강건하게 됩니다.
오늘의 (6/23) 말씀 묵상 (에베소서/Ephesians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in whom you also are being built together
into a dwelling of God in Spirit.
사도 바울은 건축이라는 영역을 그림 언어로 사용해서 모든 건물은 작은 돌들이
함께 모여서 세워지고 유지된다는 점을 예로 들며 이방인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들의 연합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점점 완성되어 갑니다.
우리의 인생도 공사중이고 우리의 신앙도 성장중이기에 서로 도우며 연합해야
합니다. 나 혼자라는 생각은 버리고 함께 동역하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양보하며 낮추며 섬길 때 하나님께서 기뻐 거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요 복음을
전하기 좋은 공동체가 됩니다.
지금 교회의 하나 됨과 연합을 깨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혹시 그것이 바로
자신은 아닌지를 돌아보십시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6/22)
오늘은 주일입니다.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회개와 감사와 올려드리는 찬양과 선포되는 말씀으로
깨끗함과 새로움과 회복과 치유를 얻고
새출발 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6/21)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1 Peter 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But even if you should suffer for the sake of righteousness, you are blessed.
And do not fear their intimidation and do not be troubled.
사도 베드로는 선을 행하고도 받는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상식적으로나 정상적이라면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지만 현실은 기대와는 달리
선을 행하고도 고난을 받습니다. 그렇게 의로운 고난을 겪는 신자는 복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팔복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복입니다. (마 5:10)
왜 의로운 고난이 복인가?
그것은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영광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도 말고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야 합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의 고난은 구원에 이르는 과정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고난이 옴을 알고 대비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고 천국을 누리십시다.
오늘의 (6/20)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Revelation 7:16-17)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They will hunger no longer nor thirst anymore;
nor will the sun beat down on them, nor any heat;
for the Lamb in the center of the throne will be their shepherd
and will guide them to the springs of water of life;
and God will wipe every tear from their eyes.
이 구절은 이사야 49:10절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인데
사도 요한은 이 이미지를 마지막 날에 승리한 자들이 누릴 복을 표현하는데 사용합니다.
말세의 징조들은 여러 가지 시험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데, 그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찬송과 영광과 능력과 존귀를 주께 돌릴 것이고
주님은 그들의 모든 괴로움과 수고를 위로하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날을 고대하며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며 끝까지
순례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6/19)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Revelation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I know your deeds. Behold, I have put before you an open door
which no one can shut
because you have a little power
and have kept My word, and have not denied My name.
소아시아에 있는 7 교회들 가운데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문을 열고 닫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신 주님께서, 열린 문을 그들에게
허락하셨고 그 구원의 문이 그들의 앞에 활짝 열려있음을 그래서 주님
외에는 아무도 닫을 수가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숫자가 적고 영향력도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켰으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가져야 할 가치관과 목표는 그저 강하고 큰 교회가 아니라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구원의 문을 열어두사 영혼을 구원케 하십니다.
주님께서 아시고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실 선한 행위가 있는지…
그런 교회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