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29) 말씀 묵상 (요한일서 4장16절, 1 John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6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And so we know and rely on the love God has for us.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s in him.
사도 요한이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사랑은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을
깨달은 자들의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 즉 행동으로 사랑의 계명을 지켜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목표는 자신에게 사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체험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그것이 구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을 통해,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 분의 사랑도 함께 거하시기에 우리는 사랑
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며, 그 사랑을
우리 안에서 실현하고 온전히 완성하게 됩니다.
당신은 세상에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당신 안에 거하시고 그 분이 당신을 사랑하는 자로
변화되기를 원하시고 또 변화시키심을 믿고 사랑하는 자녀가 되십니다.
오늘의 (6/28) 말씀 묵상 (요한일서 3장23절, 1 John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And this is his command: to believe in the name of his Son, Jesus Christ,
and to love one another as he commanded us.
우리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때 십자가 구속으로 생명을 얻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연약하여 사랑을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주님은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로 계명을 지키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계속 지켜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음으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마음이 잘 맞고 좋아하는 사람만을 사랑하고 교제하곤 합니다. 그래서
관계가 좋지 못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때 죄책감과 좌절감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실패하더라도
그를 사랑하기 위해 애쓰고, 사랑하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의 (6/27) 말씀 묵상 (요한일서 3장18절, 1 John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Dear children, let us not love with words or tongue
but with actions and in truth.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진실함으로 사랑을 행한다고 합니다.
그 근거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로만 사랑하지 않으시고, 목숨을
버리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실제로 사랑을 행하셨을 때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분의 대속적 죽음으로 생명을 얻은 신자는 그 분과 같은 사랑으로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본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새
생명의 활동으로 인해 주님의 섬김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의 제자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죽이고 낮아지지 않으면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삶을
살려고 애쓸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6/26) 말씀 묵상 (요한일서 3장15절, 1 John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바라.
Anyone who hates his brother is a murderer
and you know that no murderer has eternal life in him.
세상은 사망의 지배 아래 있기에 가까운 사람끼라도 서로 미워합니다. 성도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니다. 따라서 형제를 미워하는
모습은 사망에 머물며 영생에 거하지 않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는 죄에서 해방된 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신자 안에서 생명 현상을
나타냅니다. 그 현상은 죽음의 흔적인 미움, 살인을 끊어 버리고 지체를 사랑하게 합니다. 또 죄의
지배 아래에서 지체를 미워하지 않고, 생명의 지배 아래에서 지체를 사랑하게 합니다.
죄인은 타인과 분리의 장벽을 만들고, 배타적으로 경쟁하고,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고, 힘으로
지배합니다. 영생을 가진 우리에게 이런 장벽이 있습니까? 미움과 차별과 갈등의 담을 헐고
연합하며, 경쟁이 아닌 협력을 추구하며,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 수 있으며, 섬김과 희생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6/25) 말씀 묵상 (요한일서 2장17절, 1 John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The world and its desires pass away,
but the man who does the will of God lives forever.
신자는 일시적인 사탄의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끝날 사탄의 나라는 일시적입니다.
이 세상은 물론이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도 잠시 후에 안개 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잘 아는 대로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죽을 때 가진 어떤 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자는 존재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자기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이 땅에서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사탄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과 피차일반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갑니까? 많은 사람이 이 땅에서 돈, 명예, 안락, 쾌락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알지 못하면 사탄의 나라에서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땅에서 남은 인생이 주님을 위해 살기에도 짧음을 기억하고, 잠시 후 사라질
사탄의 나라를 위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사십시다.
오늘의 (6/24) 말씀 묵상 (요한일서 2장15절, 1 John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Do not love the world or anything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하나님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동시에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권세를 잡은 사람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패했습니다.
우리는 흉악한 사탄을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땅의 것들을 전전긍긍하며 살
자들이 결코 아닙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자신의 안전과 명예, 그리고 쾌락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하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우리가 어찌 자신의 나라를 확장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사탄의 나라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이 땅의 모든 것들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우리 함께, 남은 생애 동안 아쉬움 없이, 후회 없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십시다.
오늘은 (6/23) 주일입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 마음을 다해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날입니다.
섬기는 교회에서, 계신 곳에서 진정으로 예배 드리십시다.
오늘의 (6/22) 말씀 묵상 (요한일서 2장9절, 1 John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Anyone who claims to be in the light, but hates his brother is still in the darkness.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어둠 가운데 거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해석하면, 성도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일맥상통 합니다.
죄인인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옛 시대의 계명을 도저히 지킬 수 없었습니다. 하시만 새 시대에
거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고, 가까운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고 권면해도 미워할 짓을
하니까 미워하는 것이라고 받아칩니다. 하지만 빛 가운데 거한다면, 하나님을 알기에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해서 마땅히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어렵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계명이기에
순종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오늘의 (6/21) 말씀 묵상 (이사야 61장10절, Isaiah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I delight greatly in the LORD;
my soul rejoices in my God.
For he has clothed me with garments of salvation and arrayed me in a robe of righteousness
as a bridegroom adorns his head like a priest, and as a bride adorns herself with her jewels.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손은 구원과 영광을 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며, 우리를 의롭게 하사 ‘공의의 겉옷’을 더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신랑이 자신의 신랑 됨을 나타내는 관(사모)을 쓰는 것 같고, 신부가 자신의 신부
됨을 알리는 보석과도 같습니다.
또한 구원을 경험한 자는 넘치는 기쁨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찬송도 드림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얻은 복 받은 자손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신 복에
감사하기보다 부족한 몇 가지 때문에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받아들이기 어렵고 싫은 현실이라도
감사하며 살아가면 삶이 달라질 것이고 본질인 구원을 새롭게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받은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고 감사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