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0/5)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And this is his command:
to believe in the name of his Son, Jesus Christ, 
and to love one another as he command us.
 
우리가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즉 게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주 안에 거하는 것이요, 성령의 임재를 통해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우선순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 서로를 사랑하게 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랑의 행위가 가능해집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세상의 방식으로 사랑할 수는 있어도,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서 자신을 버리신 그 사랑의 수준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성경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고, 신앙의 훈련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 안에 거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댜ㅏ.
어쩌면 가장 어려운 사랑의 실천을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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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4)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Dear children, let us not live with words or tongue
but with actions and in truth.
 
여기 ‘말과 혀’는 같은 의미로서, 실천이 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와는 달리 ‘행함과 진실함’은 실천하는 사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합니다.  즉 행함은 사랑의 역동적 측면을 나타내고, 진실함은 사랑의
질적인 측면을 나타냅니다.
 
사도는 재물로 궁핍한 형제를 사랑하고 도와줄 마음을 닫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궁핍한 형제를 도와줄 마음을 여는 것은 말과 혀의 피상적 태도가 아니라 행함과 진리로
사랑을 드려니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사랑한다 말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성도가 다른 지체들을 진심과 행실로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영적 균형을 이루지 못한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가장 큰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였습니다.
사랑은 행하는 동사이지 말뿐인 명사가 아님을 알고 힘써 행하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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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3)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The world and its desires pass away,
but the man who does the will of God lives forever.
 
우리가 몸 담고 살아가는 세상에는 세속적 가치들, 즉 육신을 만족시키기에 합당한
것을 추구하라는 세상의 속삭임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에 속한 정욕들은
다 지나갈 것입니다.  반면에 영원히 남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성숙해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한다면 영적으로 어린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과 경건한 공동체의 교제와 은혜의 수단을 적극적 활용함으로
우리가 계속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육신의 정욕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세상과 세상을 사랑한 모든 사람들은 공동 운명으로
파멸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한시적인 이 세상 사랑하기를 거부하고 죄를 미워하며
오직 사랑의 계명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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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2) 주일입니다.

오늘은 10월 들어 맞는 첫 주일입니다.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며
그 분 앞에서 우리의 삶이 깨끗함과 치유와 새로움을 덧입는
은혜의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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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 말씀 묵상 (요한1서/1 John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Do not love the world or anything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여기서 언급하는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를 가리키기 보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에 의해 통제를 받는 체제를 가리키며, 또한 ‘사랑’이란 말은
어떤 ‘기호’나 ‘매력’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사용됩니다.  ‘기호’나 ‘매력’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이기에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그것의 방향과 동기가
문제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욕구나 매력, 사랑은 빛 가운데 거하는 자로서 타인에 대하여
올바르고 창조적인 방향과 동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매력은
옳지 못하고 이기적인 방향과 동기를 지니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도들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사탄의 유혹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방법이나 형태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본질은 언제나 동일하게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매력을 거부하고 영적인 것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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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30)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Anyone who claims to be in the light 
but hates his brothers in still in the darkness.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빛 안에 거하는 행위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받은 은혜를 잊어버려,
갈 곳을 알지 못하고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살고 행할 때 가능합니다.
 
미움은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듭니다.  미움은 감정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앞을 보지 못하게 하기에 전진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밝은 눈을 갖고, 전진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미움과 다툼이 있다면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하든 어둠 속에서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지체를
사랑하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화목을 이루신 주님께 감사하며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며 실천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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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9)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2 Peter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게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But grow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To him be glory both now and forever.
 
사도는 서신의 마지막 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곧 영적 이해력이 우리의 
영적인 삶을 자라게 한다고 교훈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인간적인 지혜나 힘을 축적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안’ 덕분입니다.
 
종말을 대비하는 자세, 즉 주님의 날을 기다리는 최고의 자세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 알고, 또한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에 근거한 건전한 지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우리는 미혹이 많은 이
세상에서도 성결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종말의 때인 지금, 혼돈하는 이 세상에서 잘못된 신앙 지식은 오히려 성도들을 혼돈에
빠지게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도 큰 장애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뿐만 아니라 성숙하도록 자라가는
삶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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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8)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2 Peter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주의 재림이 더디거나 지연된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미지근하게 하거나, 결단 없이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더디거나 느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일하십니다.
 
주님의 재림은 더디거나 지연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사,
오래 참으시므로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이르러 멸망 받지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세상의 멸망을 지연시키고 계실 뿐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초대교회 성도들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재림에 대한 이단들이 많습니다.  주의 날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삶이 주님의 재림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세속에 미혹된 ‘자기 생각들’과 ‘목표의 굴레’에서 벗어나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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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7)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2 Peter 2: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Of them the proverbs are true: ‘A dog returns to its vomit,’
and ‘A sow that is washed goes back to her wallowing in the mud.’
 
사도는 거짓 교사와 배교자에 대한 경고를 하나의 속담으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첫째 비유는, 잠언 26장 11절의 인용으로, 개가 자신이 토하여 놓은 것을 조금 후에
다시 먹는 것과 같이 거짓 교사들이 다시금 원래의 본성대로 죄악의 길로 되돌아감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했음을 가리킵니다.
 
둘째 비유는, 헬라의 유대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격언으로, 과거로 되돌아간 배교자들
즉 거짓 교사들이 한 번 옛 생활을 잠시 떠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과거를 잊지 못하여 결국은 죄악의 쾌락으로 빠지게 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배반하고 돌아선 사람들은 가장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 역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변화를 받았다 해도, 옛 삶의 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옛 삶으로 돌아가, 죄악에 탐닉하기 쉬워짐을 알고,
스스로 경계하여 날마다 성령과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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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6)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2 Peter 1: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And we have the word of the prophets made more certain,
and you will do well to pay attention to it,
as to a light shining in a dark place
until the day dawns and the morning star rises in your hearts.
 
여기 ‘더 확실한 예언’은 구약 전체에 나타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의미합니다.
사도는 이 예언을 어두움을 비추는 등불에 비유하고, ‘어두운 데’는 빛 되신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은 등불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향해 비추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의 실제적인 재림의 때가 이르기까지, 그분의 재림에 관한
말씀들을 연구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내면의 변화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 언급된 ‘날’은 재림의 날을 가리키며, ‘샛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현재처럼 어둡고 소용돌이치는 세상 속에서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살아가다가는 세상이라는 풍랑 속에 쉽쓸려 자신도 모르게
영적인 줏대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영적으로 깨어서 더욱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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