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1)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Revelation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and He will wipe away every tear from their eyes
and there will no longer be any death
there will no longer any mourning or crying of pain;
the first things have passed away.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새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삶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죄가 없고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그 때가 되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눈물과 죽음과 슬픔과 아픔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처음 것들에 속한 것이고 모든 악이 사라진 후에는 죄의 결과인
사망과 슬픔과 고통은 사라집니다.
 
죄로 오염되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으면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대체하시기에
그날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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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9) 말씀 묵상 (에베소서/Ephesians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여시고
For He Himself is our peace,
who made both groups into one,
and broke down the barrier of the dividing wall.
 
직역하면 ‘그 분 스스로가 우리의 평화이신지라’로 예수님 스스로 신자들의 평화가
된다는 강조의 의미로 이 평화가 인간의 어떤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이 화평이 되시기 위해 행하신 일은, 둘을 하나로 만드셨고,
중간에 막힌 담을 자신의 육체로 허셨고, 계명의 율법을 폐하신 일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꽉 막힌 담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전혀 다른, 원수지간인 두 부류가 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은 막힘 담을 허뭅니다.  교회와 성도가 복음을 전하고 주변을
화평케 하는데 앞장서야 하는데 오히려 담을 쌓는 것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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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8)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며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Let the peace of Christ rule in your hearts,
to which indeed you were called in one body,
and be thankful.
 
사랑과 밀접하게 공존하는 것이 평강입니다.  골로새서와 쌍둥이 서신으로 불리는 에베소서에서도
(엡 4:2-3) 나오는 바, 바울에게는 평안과 사랑이 공동체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줄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말은 단순히 주님을 닮이 평온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이루어진 사람 사이의 담을 허물어 화목케 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마음이 합당한 상태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과 사랑의 공동체가 될 때, 성도들이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될 수 있고,
세상에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낼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처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름을 받았기에 힘써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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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7) 말씀 묵상 (시편/Psalms 85: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I will hear what God the LORD will say;
For He will speak peace to His people, to His godly ones;
But let them not turn back to folly.
 
이 시편은 고난 상황에 빠져 있는 공동체의 간구로 일반적으로 공동체의 애가로
분류가 됩니다.  현재의 고난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과거 구원받은 경험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 경험을 근거로 하나님께 간구하는데 핵심은 ‘화평’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는데 다시는 어리석은 데로 돌이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평안이 임하면서 그분이 백성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금 당장 구원이 임하지는 않았지만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로 느껴진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요 믿음의 응답이 아닌지…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흔들림 없는 평안을 누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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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6) 말씀 묵상 (에베소서/Ephesians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
In Hi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our trespasses,
according to the riches of His grace.
 
이 구절은 성자이신 예수님의 핵심 사역에 대한 말씀으로 그것은 ‘속량’ 곧
‘죄 사함’입니다.  이 속량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계획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해방되어 구원을 얻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값없이 영생을 얻었지만 그것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죽으셨기에, 그분이 대신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기에
이루어졌음을 알고 감사하며 또 다시 죄의 노예로 살지 않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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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25) 주일입니다.

오늘은 2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부활절(3/31)을 앞두고 사순절이 깊어 갑니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지를 알고
새롭게 거듭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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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4)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I will not leave you as orphans;
I will come to you.
 
성령님의 오심에 대해 말씀하시던 예수님은 자신의 다시 오심으로 주제를 바꾸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고대 로마에서 고아는 ‘주인을 잃은 노예’나 ‘스승을 잃은 제자’의 의미도 있는데
넓은 의미에서 ‘상실감에 빠진 사람’이나 ‘소외된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결코 그런 상태로 버려두지 않으실 것을 강조하십니다.
 
여기서 다시 오시는 때는, 먼 훗날 재림의 때가 아니라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의
기간으로 보기에도 어려운 것은 승천하시면 제자들만 버려두시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날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상호내주 속에 제자들도 동참해서 하나님과 상호내주
관계 가운데 살아가는 시간을 뜻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곧 오셔서 내주하실 성령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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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3)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God is faithful through whom you were called
into fellowship with His Son, Jesus Christ our Lord.
 
사도 바울은 통상적인 인사를 고린도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한 다음 그들을
부르셔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로 이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부르신 방식은 ‘하나님을 통해서’이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분의 뜻으로 예수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그 교제를 통해서 성도와 교회를
마지막 날까지 책임지시고 보호하시니 그분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한 번 믿었다고 방심하면 안 되고 계속해서 주님과 교제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나 주님 모두 성도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성도로 부르신 목적입니다.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관계가 우선이 될 때 정체성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도 견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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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2)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Himself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His Son cleanses us from all sin.
 
하나님은 빛이시고 빛 가운데 거하시는데 여기서 ‘빛’은 물리적 광채가 아니라
하나님의 근본적인 속성이며 본질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그분에게는 어두운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는 모든 죄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정결해졌습니다.
그 역사적인 사건을 마음으로 믿음으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된 사람은 더 이상
어둠 가운데 행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빛 가운데 행해야 됨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에서 깨끗하게 된 성도는 하나님과 빛 가운데 사귐이 있고
그러면 성도 간에 사귐도 가능해집니다.  빛으로 재창조가 일어나기에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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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1)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And not only this, but we also exult in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whom we have now received the reconciliation.
 
사도 바울은 죄인이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선언한 다음, 그로인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하셨고 성령을 통해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을 깨우쳐 주셨기
때문에 성도는 비록 세상에 살면서 환난을 겪더라도 장래 진노에서 구원받을 것을
굳게 확신하며 오늘을 기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복을 잊어버리고 영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환난 가운데서도 그분의 영광을 소망하며 자랑하는,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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