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9/6)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A joyful heart make a cheerful face,
But when the heart is sad, the spirit is broken.
저자는 마음과 삶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구약에서 ‘마음’은 삶의 방식과 행동을
결정하는 기관으로, 모든 판단과 삶의 근원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겉으로 표출이 되어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 그런
사람은 콧노래를 부르고 쉽게 말을 건내고 웃고 긍정적입니다.
반면 마음의 근심은 영혼을 무너지게 합니다. 얼굴이 어둡고 말 수가 없고 부정적이고
대인관계도 피하게 됩니다. 결국 마음의 평안이 내적/외적 삶을 좌우함을 알려줍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지혜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기에
그분 앞에서 선을 행하며 의의 길을 선택하고 행함으로 즐겁고 평안한
마음을 누리십시다.
오늘의 (9/5)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Go to the ant, O sluggard,
Observe her ways and be wise.
잠언의 여러 주제들 가운데 이번에는 스스로를 해 입히는 게으른 자에 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게으른 자’로 번역된 이 단어는 잠언에서 유일하게 이 구절에서만
사용이 되었습니다. 게으른 자는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향유할 노력도 하지 않고
기존의 질서만을 문제 삼는 사람입니다. 기질이 그렇기에 그는 능동적으로 불의를
일삼습니다. 중요한 시기를 무력하게 보낸다면 지각이 없어 사람답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짐승보다 미련한 것입니다.
지혜의 왕은 그런 게으른 자에게 개미에게서 부지런함을 배우라고 합니다.
개미는 지도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신의
역할에 따라 부지런히 일을 합니다.
게으름은 모든 죄악으로 통하는 문과 같기에 개미의 부지런함을 배워야 미래에 낭패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철저한 시간 관리로 세월을 아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9/4) 말씀 묵상 (신명기/Deuteronomy 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But the word is very near you,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
that you may observe it.
모세는 고별 설교를 통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킬 명령이
바로 그가 지금 모압 땅에서 선포하고 있는 율법을 가리킴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율법은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 건너편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 매우 가까이 있음을,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말씀이 가까이 있는 목적은 행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신명기는 명령을 지키는 것을 계속 강조합니다. 순종은 머리로 아는 것처럼
쉽지 않지만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합니다. 그렇게 할 때
생명과 복이 주어집니다.
바쁘고 분주한 일상이지만 영적 건강을 위해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며 먹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행하여 승리하며 풍성한 삶을 사십시다.
오늘의 (9/3) 말씀 묵상 (하박국/Habakkuk 3:13)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You went forth for the salvation of Your people,
for the salvation of the anointed.
You struck the head of the house of the evil
to lay him open from thigh to neck. Selah.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이 전쟁에서 능하신 용사로 악인들을 징벌하러 이 땅에
강림하시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는데, 너무 놀라고 두려워서 창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떨릴 정도로 영광에 압도되었습니다.
여기서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다’는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기초에서 목까지’라는
뜻이고, ‘허벅지에서 목까지, 꼬리에서 목까지’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악한 자들을 완전히 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택한 백성의 불순종과 불신앙을 징계하시기 위해 비록 탐욕스러운
이방 나라를 사용하시지만 그들은 멸하시고 의인은 남겨두십니다.
믿음이 살게 합니다.
오늘의 (9/2) 말씀 묵상 (하박국/Habakkuk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Behold, as for the proud one,
His soul is not right within him;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묵시를 기록하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명백하게 새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묵시는 더딜지라도 반드시 응할 것이며
거짓되고 교만하며 탐욕으로 노략을 일삼는 나라는 반드시 노략을 당할 것이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자신과 유다 백성이 당하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한 고난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답을 듣고자 하는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유다가 이방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지만 그들 또한 탐욕으로 인해 망할 것이고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자신을 의탁하는 믿음을 가진 의인은 살 것이라고 답해주셨습니다.
영혼과 육체의 힘을 다 빼고 하나님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맡기고 의지하는 겸손하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신칭의’는 유효합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9/1)
새로운 달 9월 첫 주일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한 달을 돌아보며 새 달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결단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8/31) 말씀 묵상 (시편/Psalms 145: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Great is the LORD and highly to be praised.
And His greatness is unsearchable.
다윗이 쓴 시로, 매 구절의 첫 자음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된 형식의 시로
개인이 부르는 찬송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이신지
인간의 관찰과 경험으로는 탐구할 수가 없다고 표현합니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그분은 무한하신 분이시고 측량할 수 없기에 찬양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왜 측량할 수 없이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단순히 그분이 위대하시지만 하늘에만 계시고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 분이라면
굳이 찬양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낮고
연약한 인간과 함께 하기를 원하시고 보살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기에 참된 찬양을 드림이 마땅합니다.
그분께 받은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자발적인 기쁨의 찬양을
올려 드리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8/30) 말씀 묵상 (시편/Psalms 136:1)
여호와께 감사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아심이 영원함으로다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and His loving-kindness is everlasting.
이 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는 뜻의 후렴이
되풀이 된다는 것인데 이는 공동체 제의문 구실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제의를 시작하면서 시인은 회중이 함께 여호와께 감사의 찬양을 시작하도록
대주제를 노래하며 감사의 대상이신 여호와는 선하시다고 선포합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요 창조주이시지만 홀로 멀리 떨어져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자하시며 친밀하신 분으로, 피조물을 먹이시고 보호하시는
선하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마땅히 그분께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과거부터 지금까이 변함이 없으시며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 환경이나 조건에 관계없이
감사하며 찬양을 올려드림이 마땅합니다.
오늘도 조건을 따지지 말고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십시다.
오늘의 (8/29) 말씀 묵상 (시편/Psalms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Behold, how good and how pleasant it is
for brothers to dwell together in unity.
‘다윗의 시, 성전에 오르며 부르는 노래’라는 표제가 있는 이 시는, 역할이나
용도에 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남 왕국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중앙 성소화
전통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성소에서 화목제의
제물을 함께 나눠 먹으며 낭독한 축복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한된 공간, 한정된 소유를 두고 형제들이 함께 살며 화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형제들이 한데 어울려서 사는 것이 좋고 기쁘다고 강조하는 것은
욕심으로 어긋난 관계를 회복함으로 얻는 평화를 누리는 것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가 한 가족이기에 함께 성전에 올라가 절기를 지키며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오늘날의 예배가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오늘의 (8/28) 말씀 묵상 (시편/Psalms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Those who sow in tears shall reap with joyful shouting.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은 이 시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회상이나 서글픈 현실과 해방을 바라는 시로 봅니다.
농부가 충분히 비가 내리지 않아 걱정하며 씨를 뿌리지만 언젠가는 얼마가 되든지
자기 몫의 곡식 단을 들고 기쁨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소망하며 기대하는 마음을
그립니다. 즉 순례자는 비관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순례를 계속 이어갈 힘과 회복과
해방의 기대를 역설적이게도 힘없이 씨를 뿌리는 농부의 모습에서 찾고 있습니다.
시작은 되었지만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우리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맞을 수 있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땀과
눈물을 사용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순례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