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일입니다. (12/29)

오늘은 2024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한 해를 돌아보며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림으로 깨끗함을 입고
새롭게 결단하며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12/28) 말씀 묵상 (누가복음/Luke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예수님께서 세리인 레위를 (마태) 제자로 부르신 후, 그들과 함께 잔치를 벌일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비방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식사하신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의인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이 땅에 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있다면 자기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일 것인데 그 중에 기득권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선민사상을 가진 유대인들이 들어 있는데 그들 눈에는 로마를 위해 일하며
이득을 챙기는 세관원을 죄인으로 여기고 배척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닝은 그런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밝히셨습니다.
 
우리도 죄인인데 주님의 택함을 받은 것처럼 지금도 주님은 죄인을 부르고 계십니다.
기회가 왔을 때 주님을 믿고 구원의 은혜를 얻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12/27) 말씀 묵상 (시편/Psalms 57: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For Your loving kindness is great to the heavens
and Your truth to the clouds.
 
다윗의 생애와 관련이 된 시로 그가 사울 왕을 피해 아둘람의 굴에 있었던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는 어려움 중에 오히려 많은 후원자를 얻고 본격적으로
세력을 키워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은혜 베푸사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마음이 확정되었다’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 입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그 문제에 사로잡혀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쓰지 못하고 허둥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모습이 우리의 미성숙한 모습인데
눈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위기를 극복하는 성숙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관점이 바뀌고 우선순위도 바뀌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찬양할 수 있고 구원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을 만나면
고난의 장소가 찬송의 장소로 바뀌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오늘의 (12/26)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I am the bread of life.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 다음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을 얻는 실제적인 방법은 예수님 자신을 을 믿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떡은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고 죽었던 만나와는 달리
한 번 먹으면 결코 죽지 않는 떡입니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결국 죽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떡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을 죄에서 해방하실 구세주로 믿으면
죽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주시는 복이나 그분이 행하신 기적이나 놀라운
가르침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고 따라야 영생을 얻습니다.  
 
믿음이란, 단순히 마음속으로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되뇌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신분을 알고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며, 그분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이 은혜이기에 감사하며 믿음 안에 계속
거해야 합니다.


오늘의 (12/25) 말씀 묵상 (누가복음/Luke 1: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And behold, you will conceive in your womb and bear a son,
and you shall name Him Jesus.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에 있는 마리아게에 나타나 ‘은혜를 받은 자’라고 부르며
아기를 낳을 것이며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태어날 아기에게
직접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큰 자가 될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며,
다윗의 왕위를 받을 것이며, 영원한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의 다스리는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예언도 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그분으로 인해 죄에서
해방되는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기에 기뻐하며 그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12/24) 말씀 묵상 (누가복음/Luke 1:37-38)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For nothing will be impossible with God.
And Mary said, ‘Blessed, the bond-slave of the Lord; 
may it be don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And the angel departed from her.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기를 갖는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자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능하다고 했고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고백하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동정녀
탄생임을 믿고, 그 일이 일어날 때에 임할 모든 수난을 각오했다는 의미입니다.
(간음죄로 인해 돌로 맞아 죽은 것도 포함됨)
 
마리아가 자신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믿음으로
순종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위대한 호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시고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오늘의 (12/23)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She will bear a Son; and you shall call His name Jesus,
for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하는 마태복음.
예수님이 다윗의 합법적인 자손으로 오시기 위해서는 요셉이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를 반드시 아내로 데려와야 했습니다.  주저하는 요셉에게 천사가 
그 아기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과 이름과 잉태된 이유까지 알려줍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앞으로 감당하실 사역의 성격을 나타내는데,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메시아 대망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오실 메시아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오심이 아님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에 때가 되면 그분의 계획과
뜻을 알려주실 줄 믿고, 요셉과 같이 당장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겸손히 그 때를
기다리며 오늘에 최선을 다하면 그분의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12/22)

오늘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여 드리는 주일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어야만 되었는지를 
그분이 오심으로 세상이 얼마나 큰 복을 누리게 되었는지를 
말씀으로 확인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림으로
점점 세속화 되어가고 있는 성탄절을 성도들이 먼저 회복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12/21)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Galatians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Bear one another’s burdens,
and thereby fulfill the law of Christ.
 
율법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사도 바울은 실제적 결론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말합니다. 종의 법인 율법에 대응하는, 자유롭게 하는 ‘성령의 법’을 이제는 ‘그리스도의
법’과 연결하여 그 법을 성취하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서로 짐을 지라’거 명령합니다.
 
여기서 ‘짐’은 ‘무거운 것’으로 ‘책임과 의무’라는 개념을 지닙니다.  바로 앞 구절과 
연결하면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의미하는데
성령이 인도하시는 믿음의 공동체는 반드시 짐을 서로 지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기의 짐은 물론 다른 지체의 짐도 짐으로써 교회가 한 몸을 이루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체가 서로 연결되고 몸이 건겅하게 자라게 하기에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지체의 허물과 연약함을 들춰내기 보다
긍휼히 여길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오늘의 (12/20)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Finally, brethren, whatever is true, whatever is honorable,
whatever is right, whatever is pure,
whatever is lovely, whatever is of good repute,
if there is any excellence and if anything worthy, 
dwell on these things.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지켜야 하는 신앙의 덕목 8 가지를 제시합니다.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경건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하고, 덕이 있고
기림이 있고.  덕이 윤리를 강조한다면 기림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는데 이 동사는 논리적, 체계적으로 철저하게 사고하는
것으로, 제시한 덕목에 전념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런 삶에 전념할 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이 되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기회가 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스스로 이런 신앙의 덕목을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고
혹시라도 그냥 지나쳤거나 부족하다고 여긴 덕목이 있다면 돌이켜 다가오는 해가
진정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해가 되게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