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2/4) 말씀 묵상 (시편 143편1절, Psalms 143: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O Lord, hear my prayer, listen to my cry for mercy;
in your faithfulness and righteousness come to my relief.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는 사람은 자신의 어려움과 구원을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기도자는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의를
근거로 이 기도를드리며 호소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악인에게는 심판을 행하시며,
그 분의 백성들에게는 진실과 사랑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간에게는 의가 없다 하더라도, 십자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죄가 없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또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난관을 만났을 때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그 문제를 아시고 능히 해결하시는 하나님께 먼저 아뢰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진실과 의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전적으로 우리의 믿음에 달렸습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입술로만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느 때든 신실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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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3) 말씀 묵상 (시편 42편1절, Psalms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As the deer pants for stream of water
so my soul pants for you, O God.
 
시인의 영혼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사슴은 자신을 해치려는 짐승들과
사냥꾼들 때문에 물가로 잘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런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내려오는 것은 죽음의 위기까지도 무릎쓸
만큼 갈급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갈급함도 목숨을 걸 만큼 깊은 것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 소망을 두며,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와 행동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신뢰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인처럼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갈급해 하고 갈망하고 있습니까?  그런 일이 없어서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고 변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그런 일이 없을 때 더욱 조심하여 하나님을 찾아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날이 갈수록, 그리고
삶에 어려움이 있으수록 더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믿음의 삶을 살려고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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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1) 말씀 묵상 (요한일서 2장15절, 1 John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Do not love the world or anything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권세를 잠시 잡은 사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흉악한 사탄을 이긴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의 것들에게 전전긍긍하며 이끌려서 살 자들이 아닙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자신의 안전과 명예, 유익, 그리고 쾌락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기에 믿은 후의 삶은 생명을 주신 그 분을 위해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날마다 하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우리가 어찌 자신의 나라를 
확장하는데만 그리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만 애쓰겠습니까?  
 
세상을 사랑할지 안 할지 더 이상 고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누리라고 주셨으니 누리면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을 주신 분께로부터 돌아서는, 멀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안에 없게 됩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세상이 아니라 그
사랑을 굳게 믿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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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30) 말씀 묵상 (아모스 5장24절, Amos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But the justice roll on like a river, righteousness like a never-failing stream.
 
아모스 선지자는 남 유다 사람으로 북 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만큼 북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심각한 지경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만 어그러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도 어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사회에는 공의도 정의도 없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과 권력을 쥔 사람들이 바로 공의였고
정의였습니다.  
 
공의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바르게 세워주는 기준입니다.  공의가 무너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무너집니다.  아니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공의가 무너집니다.  정의가 무너지면
도덕과 윤리가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공의로워지고 정의로워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공의와 
정의가 바로 세워질 때 어그러져 있던 관계들이 곧게 펴질 것입니다.
 
모든 신앙인들에게는 세상을 바르게 만들고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이 땅에서 바르게 살지 못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이 안 되기에 점점 사회가 더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정의 사회 구현’  누구를 탓하기 전에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리를 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주변이
밝아질 것이고 하나님의 긍휼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 한 사람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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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9)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2장5절, Revelation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Remember the height from which you have fallen. Repent and do the things you did at first.
If you do not repent I will come to you and remove your lampstand from its place.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는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들 중 첫번째가 바로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였습니다.  에베소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범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처음 행위를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즉 그 교회를 없애버리시겠다고 엄중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잃어버린 처음 행위는 무엇인가?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의 감격을 잃어버렸고, 지체들 사이의 사랑, 
즉 교우들 간의 사랑도 상실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있었으며 윤리적인 설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어디서 그 능력을 잃어버렸는지를 생각하라고 책망하시면서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은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은 없이 그저 형식적인
종교 행위만 남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도 없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고 자부하며 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까?  처음 예수님을 진정한 구세주로 영접할 때의 뜨거웠던 마음을 지금도
간직하고 지키려고 합니까?  다 식어버리고 냉냉함과 비판함과 정죄함만 더해가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교회를 없이하신 것처럼 우리의 구원도 위험합니다.
회고하고 회개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뜨거움을 회복하고 늘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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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8) 말씀 묵상 (시편 119편50절, Psalms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My comfort in my suffering is this;
Your promise preserves my life.
 
흔히들 이런 말을 합니다.  위기는 기회다.  모든 어려움이 다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닥친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할 때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사방이 막혔을 때도 한 곳은 늘 열려있는데 그것은 바로 위 즉 하늘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 중에라도 위로가 되기 때문이며, 우리를 살리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시편 저자는 그 말씀의 능력을 굳게 믿고 나갑니다.
시편 저자처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였더라도 약속의 말씀이 있는 한 믿고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판단을
버리고 말씀의 인도를 따를 때, 최악의 조건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지 않으시고, 또한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도 주십니다.  인간적으로는 아무 길이 없어
보이지만, 말씀은 반드시 돌파구를 찾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쓰여진 글씨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믿음의 사람에게는 소망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묵상함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혜롭게 합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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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7) 말씀 묵상 (요한일서 2장17절, 1 John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The world and its desires pass away,
but the man who does the will of God lives forever.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빛 가운데 거한다면 소극적으로는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어둠 가운데 행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 사랑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 땅에서 살고는 있지만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일시적이라도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며 거기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자기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이 땅에서 자신과 정욕을 위해 사는 것은 사탄의 나라를 위해, 사탄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갑니까?  우리의 시선이 사탄의 나라로 치우치는 순간,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안전과 명예와
정욕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언제 주님 앞에 갈지 모르지만 또한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지만 언제가 
되든 두렵지 않게 서도록,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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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6) 말씀 묵상 (신명기 28장8절, Deuteronomy 28: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The Lord will send a blessing on your barns and on everything you put your hand to.
The Lord your God will bless you in the land he is giving you.
 
기독교는 추상적이거나 막연한 종교가 아니라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종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도 마찬가지로
실제적이로 구체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즉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순종하는 민족에게도 복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민족은 국가 전체가 풍년을 맞아 큰 수확을 거두고
많은 곡식을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과의  교역에 있어서도 주도권을 쥐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큰 축복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땀을 흘린 대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과 기업에서 수고한 대로 얻는 축복은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이런 복을 누리기 위해 당연히 가장 먼저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당연히 성실하게 땀도 흘려야 합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정직하게 행하는 것이 갈수록 쉽지 않습니다.  유혹도 많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넘어가면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은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징계도 피할 수 없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여 땀을 흘림으로 신령한 복을 넘치도록 누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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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5)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1장18절, 1 Corinthians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오늘날 강단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는 점점 사라지고 인간의 행복과 세상적인 복에 초점을 맞춘
설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복신앙적인 설교입니다.  그렇지만 복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십자가의 도가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자연적으로 십자가를 담대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십자가를 어리석은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지혜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말씀을 이해하고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어리석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을 선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새롭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전파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가 부끄럽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아직 그 복음 안에 감춰져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할 때 비웃고 조롱하고 심지어 대적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사도 바울이 선언했던 것처럼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은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압니다.  그러니 상대방의 반응에 관계 없이 우리는 복음을 뿌리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오늘도 두려움없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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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4) 말씀 묵상 (시편 112편7절, Psalms 112:7)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He will have no fear of bad news;
his heart is steadfast, trusting in the Lord.
 
의인들은 사소한 비방에도 두려워 떠는 불신자들과는 달리 자기에게 닥쳐오는 흉한 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살핌을 확신하며 평안함을 가집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절박한 위기나 위험에 직면하게 될 때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모든 두려움과 근심을 떨쳐 버릴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애쓴다면 악인의 비방이나 어려운 역경은 의인의
생활에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 오는 진정한 평안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재난이나 역경이 있을 때에 잠시 놀라고 당황할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계속해서
약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어려움이 오히려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에 더욱 굳게 서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사람이 어떤 경우에도 의연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환경을
묵상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아시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바라볼 때 능히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시편 저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의뢰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믿음을 끌어올려 선한 싸움을 싸우고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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