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15) 말씀 묵상 (요한복음 1장1절, John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한복음은 그 첫머리에 예수님을 ‘태초’ ‘말씀’, ‘하나님’이라는 세 개의 단어와 관련된 분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시작의 경계를 넘어선 영원한 존재이시자 창조주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말씀의 실재로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원자시며,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주시는 유일하면서도 온전한 ‘그 말씀'(로고스)이십니다.
 
한 마디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피조물인 인간이 아니라 신이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땅의 만물 위에
계신 하늘의 말씀,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빛의 말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능력의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전하는 ‘말씀’이 이제 시작됨을 온 천하에 선포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혼돈된 세상에 말씀으로 질서를 부여하신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예비하고
앞당기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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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4) 말씀 묵상 (시편 63편1절, Psalms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Oh GOD, you are my God, earnest I seek you,
my soul thirsts for you, my body longs for you in a dry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다윗은 왕이었지만 늘 하나님을 갈망하고 앙모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인 광야에서 조차 하나님을 앙모했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가지는 모든 특권들보다 하나님을 뵙고
가끼이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는 현재 쫓겨난 몸이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모습은 정말
놀랍습니다.  다윗은 말 그대로 하나님만을 갈망하고 앙모하는 자로서 분명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모습이며,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갈망해야 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말은 쉽지만 삶으로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외에도 우리가 간절히 찾는 것이 있습니까?  왜 그것을 찾고 있습니까?
그것을 얻는다면 만족할까요?  오래 가지 않고 다시 목마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 오직 하나님만 찾고 찬양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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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3) 말씀 묵상 (시편 56편13절, Psalms 56: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For you have delivered me from death
and my feet from surrounding that I may walk before God in the light of life.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말씀을 찬양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으며 그로 하여금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않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혈육을 가진 사람이 그를 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때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분인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혈육을 가진
사람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과 육을 모두 멸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분을
찬양하고, 그 분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 사실을 잘 알았던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죽는 것도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고 세상에서 승리하게 만듭니다.  믿음으로 어떤 두려움이든 물리치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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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2) 말씀 묵상 (시편 55편22절, Psalms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용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Case your cares on the LORD
and he will sustain you; he will never let the righteous down.
 
시인은 자신 (혹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격려합니다.  그 격려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여기서 ‘짐’은 현재 시인이 당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고난을 포함한 인생의 모든 짐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고난을 스스로 혀결하려고 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이 그 고난 가운데서도 계속 붙들어 주실
것을 확신하는 표현입니다.  이런 확신은 ‘하나님이 결코 의인의 요동함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신앙고백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으로 인해 시인은 고난을 견디면서 소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그 확신을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 이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한 번 어려움을 당하면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려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고 다시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다윗이
아침과 정도에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필요할 때, 급할 때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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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1) 말씀 묵상 (시편 51편17절, Psalms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The sacrifices of God are a broken spirit;
a broken and contrite heart, O God, you will not despise.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와 사죄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상한 심령이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쏟은 후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간청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에 의로운 제사와 번제, 온전한 번제와 수소를 하나님께 제단에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이 이러한 그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받아 주실 것임을 
확신하는 것이지, 제사나 제물, 예배하 헌금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저 순간을 넘기기 위한, 입술만의 고백으로는 절대로
전지하신 하나님의 공정한 징계를 피할 수가 없고 또한 관계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혹시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자신의 삶의 모습은 없는지 살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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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0) 말씀 묵상 (시편 46편1절, Psalms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n ever-present help in trouble.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힘, 그리고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최악의 상황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피난처와 힘과 도움으로 여긴다면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당하는 작은 곤경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음을
확신합니까?  혹시 ‘너무 작은 하나님’을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어떠한 환난 중에서도 만날 수 있는 ‘큰
도움’이심을 기억하고 믿으십시다.  그리고 그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어디에서 힘을 얻고 합니까?  힘들고 지쳐서 광야를 걷도 있는 지체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모시는 믿음을 회복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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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9)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4장3절, 1 Thessalonians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It is God’s will that you should be sanctified;
that you should avoid sexual immorality.;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은 ‘거룩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처럼 모든 것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믿는 자들은 모든 면에서 달라져야 합니다.  당시 신전들이 많았던 데살로니가나 고린도 같은 헬라
도시에서 성도덕의 문란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도덕 생활에서도 입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성도덕과 음란의 문제는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켜 가지 않으면 성도들 역시 죄악과 음란의 올무에 걸려 들기가 너무 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믿기도 하지만 행하기 어려운 말씀이 있습니까? 그 말씀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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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8) 말씀 묵상 (골로새서 3장10절, Colossians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and have put on the new self,
which is being renewed in knowledge in the image of its Creator.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옛 사람은 죽고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남으로써
‘새 사람’을 입게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새 사람’은 ‘옛 사람’과 대조되는 개념이며,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덧입은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는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 질서 가운데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는 사람입니다.  타락한 이후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대로 행하지 않았지만, 새 사람을
입은 성도는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에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은 새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은 분노와 노여움, 악의와 비방,
입의 부끄러운 말과 같은 추하고 낡은 옛 옷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온유와 겸손, 지혜와 순결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갑니다.  아직도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두는 것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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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7) 말씀 묵상 (골로새서 2장20절, Colossians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Since you died with Christ to the basic principles of this world,
why, as though you still belonged to it, do you submit to its rules.
 
여기 초등학문이란 철학을 말하는 것으로, 물질세계나 정신세계의 단위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고상한 이론과
체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인간들의 전통과 교훈에 불과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참된 경건이 전혀 없으며 사람을 영적으로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학문이나 인간의 알량한 이성과
판단을 신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그 초등학문으로 인해 망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써 영적 세력들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음식법, 날과 절기에
관한 법, 금욕적 삶의 규례들을 지키는 것은 다시 영적 세력에 굴복하는 것이며,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존재의 영역은 그리스도 안이지 영적 세력들이 다스리는 세상이 아닙니다.  여전히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과 세상 철학이나 유행이나 가치관을 따라가는 것은 없는지 점검하고 돌이키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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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6) 말씀 묵상 (골로새서 2장12절, Colossians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having been buried with him in baptism
and raised with him through your faith in the power of God
who raised him from the dead.
 
사도 바울은 육적인 몸을 벗는 것, 즉 그리스도의 할례를 침례(세례)라는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다시 설명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에 의하면, 침례(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부활하심과 연합하여 믿음의 사람들도 부활, 즉 새로운 삶을 살게 됨을 상징힙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침례(세례)를 통해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을 입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그것은 현재적으로 새 시대의 부활의 삶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비한 체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역사는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침례(세례)는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새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표식입니다.  그러므로
침례(세례)를 받은 자들은 우리 죄를 정결케 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생각하며 성결한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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