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0/3) 말씀 묵상 (빌립보서 4장19절, Philippians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And my God will meet all your needs
according to his glorious riches in Christ Jesus.
사도는 지금 자신에게 여러 차례 물질적인 도움을 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도움 베푼 사실을 아시고 그들에게 은혜로 갚아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바울의 이 확신을 통하여
실제로 그들의 ‘쓸 것’이 부족한 형편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풍족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쓸 것을 도운 것은
단순한 원조가 아닌 하나님 사역에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들로 인해
생명이 살아나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섬김과 헌신과 희생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리고 나누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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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2) 말씀 묵상 (빌립보서 1장18절, Philippians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례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But what does it matter? The important thing is that in every way,
whether from false motives or true, Christ is preached.
And because of this I rejoice. Yes, and I will continue to rejoice.
바울 시대에도 바울의 영향력에 대한 시기와 다툼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파 근성 때문에 그리스도를 전파했다는 의미입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은 어찌되었든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음 전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없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합당한 길을 선택할 필요가 있으며 바울의 넓은 마음을 본받아 어떠한
시기심과 적대감과 경멸에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만을 기쁨으로 삼은 제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곧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환경과 상황의 구애를 받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오직 복음 전도자로 헌산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자
하는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이 전파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삷이
되어야 하는데 늘 하나님 나라는 뒷전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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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 말씀 묵상 (에베소서 4장32절, Ephesians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Be kind and compassionate to one another, forgiving each other,
just as in Christ God forgave you.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화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 노력가운데 ‘친절’은 상대방에 대해 인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뜻합니다.
인자한 마음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영접하고 얼굴과 언어와 행동으로 친절을 나타냅니다.
‘불쌍히 여김’은 연민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것으로, 무자비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신자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자비로운 마음,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과오에 대해 처벌하거나 보복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무조건 용서하신 것처럼
성도는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에게 친절을 베풀고
불쌍히 여기며 용서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든든히 세워져 갈 것입니다.
그런 화목의 노력이 아니라 오히려 깨뜨리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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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30) 말씀 묵상 (에베소서 4장29절, Ephesians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Do not let any unwholesome talk come out of your mouths,
but only what is helpful for building others up according to their needs,
that it may benefit those who listen.
‘더러운 말’이란 모든 부패한 말이며, 악하고 불건전한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교회 공동체를 허무는 모든 종류의 불평, 중상, 비방, 음란한 말, 비웃거나 냉소적인 말을 포함합니다.
그런 말들 대신 공동체의 영적 성장을 위해 유용한 말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신자는 늘 정결한 언어를 사용하고, 선한 말로 은혜 끼치기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또한 속어나 더러운 말을 입에 담아서도 안 됩니다. 더러운 말은 말하는 사람 자신이나 듣는 사람 모두의
영혼을 오염시킬 뿐입니다. 오히려 신자는 지체들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에 맞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습은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말과 행동입니다.
우리는 언어생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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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9) 말씀 묵상 (에베소서 2장19절, Ephesians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Consequently, you are no longer foreigners and aliens,
but fellow citizens with God’s people and members of God’s household,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궁극적인 목적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희생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제거하시고
화해의 역사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심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두 무리를 구별하는 수단도 사라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화목의 복을 누리게 합니다.
이방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위상은 더 이상 낯선 자나 나그네들이 아니라
유대인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른 사람들과 화복을 도모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도 포함이 됩니다.
성도는 어떻게든 교회 안에 있는 갈등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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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8) 말씀 묵상 (에베소서 1장4절, Ephesians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For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to be holy and blameless in his sight. In love.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신자를 선택하신 것은 창세전에 이루어졌습니다.
곧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따라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예정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선택과 예정은 각기 다른 두 행위가 아니라 한 행위에 대한 두 설명입니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은 곧 자녀로 삼기 위한 예정 행위입니다.
선택이 외형적이고 물리적 개념이라면 예정은 시간적인 개념입니다.
예정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며,
값없이 주신 그분의 은혜를 찬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사람이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예정이 되었고 누가 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예정되어 선택받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죄의 대가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창세전에 예정하사 선택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릴 뿐만 아니라
구별된 삶을 계속해서 살도록 애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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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27) 주일입니다.
오늘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예배를 귀히 여기고 사모하여 풍성한 은혜를 받아
한 주간도 넉넉히 세상을 이기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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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6) 말씀 묵상 (갈라디이서 2장16절, Galatians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the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observing the law,
because by observing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이 구절에서 바울은 처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여김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복음의 핵심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데, 만일 사람들이 할례의 요구를
포함하는 유대의 규례를 지키는 일로 돌아가려 한다면, 율법의 요구로 인해 죄인으로 전락하게 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에 있어 인간의 공로는 전적으로 배제합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은 율법에 대하여는 완전히 죽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롭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신앙인들 가운데 위선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교회 공동체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자신을 성찰함으로 위선적 신앙인이 되지 않기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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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5) 말씀 묵상 (출애굽기 33장14절, Exodus 33: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The LORD replied,
‘My presence will go with you, and I will give you rest.’
모세가 드린 중보기도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신 부분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은총을 입었다면 주의 길을 보여 주시고, 주를 알게 하시며
주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함께 가실 것을 말씀하시며 모세를 편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이야말로 그 어떤 재물이나 선물보다도 가장 크고 가치 있는 복입니다.
바로 그 점을 기도한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였습니다.
성도가 기도한 대로 응답받는 삶이야말로 모든 신앙인의 꿈입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임마누엘을 구하십시다.
이것이야말로 100%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필요할 때만이 아니라 늘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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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4) 말씀 묵상 (출애굽기 33장3절, Exodus 33: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Go up to the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But I will not go with you, because you are a stiff-necked people
and I might destroy you on the way.’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죄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가시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은 그들 가운데 임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것은 그들에게 내리기로 작정하신 징벌입니다. 그렇다면 성막도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시고 그들과 교제하시기 위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영광을 잃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함께 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을 진멸할까 염려하시는 즉 이스라엘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우리의 삶은 고아와 같은 처지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보다 그분이 주시는 물질과 복을 더 사랑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더 사랑합니까? 하나님 자체입니까 아니면 그분이 주시는 복입니까?
그분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복은 따라오는 부산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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