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0/5) 말씀 묵상 (로마서 15장4절, Romans 15:4)
무엇에든지 전에 기륵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For everything that was written in the past was written to teach us,
so that through endurance and the encouragement of the Scriptures we might have hope.
성경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래의 모든 성도들을 교훈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곧 읽는 자들이 인내하고 위로
받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믿음의 분량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믿음이 약한 사람을 비판하고 실족하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때로는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답답해 보이더라도, 오래 참고 이해하며 감싸 주어야 합니다. 연약한 성도를 내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으로 알고 그 어려움을 함께 할 때, 공동체의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 수준의 차이는 갈등이나 대립이 아닌 참된 믿음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기주의는 최악의
처세술입니다. 남을 배려할 때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결코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타주의
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주님을 좇을 때, 참된 제자도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읽고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진정한 제자로
거듭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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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4)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3장17절, 2 Corinthians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a freedom.
지난 밤에 일어났던 라스베가스 총기 사건은 주의 영이 없는 사람이 행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억압과 눌림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죄와 죄책감 때문에 눌려 사는 사람들, 인생고 때문에 혹은 죽음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눌려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래서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인생 자체가 무거운 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 순간, 모든 짐은 다 사라져 버립니다.
성령님은 자유케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음 속에 성령님을 모시는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 분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 하나님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러면 참된 자유를 맛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의 영을 모시고 자유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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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3) 말씀 묵상 (로마서 10장9절, Romans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If you openly declare that Jesus is Lor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will be saved.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인간이 감당해야 할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죄가 없으신 아들 예수님께서 마시게 하시고, 그 분의 자유와
구원을 온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또한 죄는 용서할 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딜메마를 결국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해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이심과 삶의 주인되심을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을 때 구원을 얻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지금도 예수님과 그 분께서 돌아가신 십자가의 사건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먼저 믿은 우리는 그들이 믿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또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됨을 보여야 합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모두 초대하셨습니다. 주님께 나아가지 못할 죄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자신은
그 누구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라고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분이 바로 그 분, 예수님이십니다.
믿음은 단순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습니다. 죄 용서를 받고 죽음 이후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삶인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인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진정으로 믿고 확인할 뿐만 아니라 구원을
전하는 믿음의 일꾼으로 날마다 살아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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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2) 말씀 묵상 (로마서 12장2절, Romans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저 구원을 얻은 사람이 되었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 윤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면서 가장 먼저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대는
기본적으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며 거스르는 세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대를 따라가면 결국 심판과 사망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성경에서의 이 세대는 주님의 재림과 함께 올 내세와 대조가 되는 기독교적 종말론적 용어입니다.
이제까지는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으면, 은혜로 구원받은 후에는 성경적인 가치관과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났지만 죄의 모든 뿌리까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은
후에도 여전히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뜻도 분별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속적으로 헌신된 생활을 하게 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됩니다. 날마다
변화되는 삶을 살기 위해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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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 말씀 묵상 (에베소서 6장 11절, Ephesians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can take your stand against the devil’s schemes.
강한 체력과 투철한 투쟁심을 가진 군인이라고 해서 늘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장비가 좋은 쪽이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적보다 더 강한 무기가 있으면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넘어가기 쉬운
마귀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합니다. 마귀의 간교한 술책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통일성과 하나 됨을 파괴하는 계획적인 시도들, 즉 거짓 교리를 침투시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모든
시도들을 가리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며 악령들의 총수입니다. 신자는 이런 존재와 전쟁을 벌이고 있기에
(영적 전쟁) 영적인 존재인 마귀를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발, 구원의 투구, 믿음의 방패, 그리고 성령의 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가 주관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죄의 뿌리는 남아 있습니다. 그로 인해
끊임없이 유혹을 받습니다. 성도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군사로서 용감하게 싸우는 것 뿐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역부족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무장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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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30) 말씀 묵상 (빌립보서 4장9절, Philippians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All you learned and received from me-everything you heard from me and saw me doing.
Then the God of Peace will be with you.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자신이 가르친 것을 행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그는 어떤 경우든 자족하는 신앙을 가지고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가 터득한 삶의 원천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이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믿고 붙들었습니다.
누가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주가 내면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골짜기와 언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괴로움과 고난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사 그 분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기에, 약속의 말씀이 있기에 결코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삶의 모든 요구에 대해 자족하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 자족하는 비결은
바로 그 분께서 주신 말씀과 교훈에 들어있습니다. 그 말씀을 믿어야 승리할 수 있으며, 그 말씀을 붙들어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주신 약속과 소망의 말씀보다 세상 가치관을 더 따라가지는
않습니까? 세상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을 더 믿지는 않습니까? 그런 것이 잠시 승리를 주고 문제의 해결을 주는
것 같지만 진리가 아니기에 오래 가지 않습니다. 화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생명이 있고 평강이 있고 화목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행함으로 말씀의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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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9) 말씀 묵상 (누가복음 11장13절, Luke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If you then, though you are evil, know how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in heaven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 him!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기도해야 할 것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가장 큰 응답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왜 성령이 가장 큰 응답인가? 성령은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요 응답입니다. 이 세상의 부모들이 악할지라도 자기 자녀에게 친절하며 구별하여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기도로 구하는 자녀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상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늘 기억하면서 우리의 기도의 영역을 우리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차원을
높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먼저 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구함으로 기도하는 것마다
그대로 응답받는 복을 누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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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8) 말씀 묵상 (예레미야 48장10절, Jeremiah 48:10)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
A curse on him who is lax in doing the Lord’s work.
A curse on him who keeps his sword from bloodshed!
이 말씀에서 ‘여호와의 일’이란 모압의 성읍들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모압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압의 멸망의 확실성을 확언하시고자 그의 심판을 행하시는데, 게으른 자
심판행하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모압을 파괴하는 일을
게을리 하거나 칼을 금하여 모압 사람들을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주를 받지
않으려먼 파멸하는 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며 모압을 철저하게 파괴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압을 멸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그 분의 백성을 실족케 했기 때문입니다.
복을 누리며 나눌 수 있는 환경이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감사치 아니하고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말만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 사람들의 풍요와 즐거움은 그들을
파멸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참 생명이시요 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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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7) 말씀 묵상 (디모데전서 6장12절, 1 Timothy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Fight the good fight of the faith. Take hold of the eternal life
to which you were called when you made your good confession in the presence of many witnesses.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영생을 취하라고 엄중하게 명령합니다.
그 이유는 만왕의 왕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도
선한 싸움을 위해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 싸움에 동참을 해야 합니다.
인류가 만들어 내는 모든 전쟁과 싸움은 악합니다. 그 결과 또한 참혹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한 싸움은 다릅니다.
이 전쟁은 그 자체가 선하며 그 결과 또한 아름답고 존귀합니다. 왜냐하면 이 싸움의 끝은 바로 주님이 주실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크신 은혜가 필요합니다. 날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큰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강한 군사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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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6) 말씀 묵상 (예레미야 2장13절, Jeremiah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My people have committed two sins; They have forsaken me, the spring of living water,
and have dug their own cisterns, broken cisterns that cannot hold water.
유다 백성은 자신들의 의무와 이익에 반대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것은 풍성하고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 분 안에는 은혜와 힘이 온전히 풍성하게 있으며, 모든 근원이 그 분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헛된 거짓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하기 위해
큰 수고를 하였지만, 그것은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갈증을 채우려고 웅덩이를
찾아갔을 때, 그들은 그 웅덩이가 단지 진흙과 수렁과 고인 호수의 더러운 쓰레기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찾고 숭배하던 우상들을 의미합니다. 결국 그들은 지금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공급하셨던
하나님을 버리고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는 헛된 우상을 섬긴 겁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우리의 기쁨과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 역시 아무리 그것을 파고
채우려고 애를 쓴다고 해도 결국 그것은 한낱 죽은 웅덩이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그런 우상들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시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의 말씀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 분께만 매달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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