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15) 말씀 묵상 (예레미아애가 3장24절, Lamentations 3: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I say to myself, 
‘The LORD is my portion; therefore I will wait for him.’
 
여기 ‘심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쉬’는 인간의 전인격 혹은 자아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굳이 ‘영혼’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라는 말은 현실상의 어떤 어려움과 궁핍 속에서도 넉넉히
건질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나 앞으로도 그의 백성들에게 풍족한 행복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어
주시는 한에는, 그분께서 자신들의 고난을 상쇄시키시고, 잃어버린 모든 것을 채워 주기에
충분함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현실적으로 겪는 어떤 어려움과 쪼들림 속에서도 넉넉히 견딜 수 있는 비결을
세상의 어떤 것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기업으로,
단순히 겉으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고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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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4) 말씀 묵상 (이사야 52장12절, Isaiah 52: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로다
But you will not leave in haste or go in flight;
for the LORD will go before you,
the God of Israel will be your rear guard.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지냈던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할 때 몇 가지를
권면하고 격려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실 것이므로 너희는 황급히 나와야 했던
출애굽 때처럼 행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의 더러움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바벨론을 떠나야
하지만, 바벨론을 무서워하여 피난하듯이 황급히 나오거나 도망하여 나올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 당시에 불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전후를 호위하셨던 것과 같이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선지자의 이러한 권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만나기 전에, 세상의 문화를 즐기며 살아가던 태도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될 때, 옛 삶의 잔재들을 완전히
털어버려야 함을 교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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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13) 주일입니다.

오늘은 성삼위일체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모든 상황은 곧 끝납니다.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온 마음을 다해 기쁨으로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위로부터 임하는 풍성한 은혜와 위로를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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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2) 말씀 묵상 (이사야 51장15절, Isaiah 51: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For I am the LORD your God,
who churns up the sea so that its waves roar–
the LORD Almighty is his name.
 
이 구절은 출애굽 때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보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표현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홍해 가운데 길을 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건너게 한 후
뒤따라오는 애굽의 군대를 바다 물결로서 멸망시키셨으므로 만군의 여호와라 불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인 ‘만군의 여호와’는 초대 히브리 역사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지휘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후 이 말은 천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가리키게
되었고, 나아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곧 천지의 주재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단지 인간 세계만을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시고, 이 세상의 모든
군대들과 천상의 군대까지도 다스리고, 주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으며 살 때,
세상에서 오는 크고 작은 문제와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역사를 기대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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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1) 말씀 묵상 (이사야 51장12절, Isaiah 51: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I, even I, am the who comforts you.
Who are you that you fear mortal men,
the sons of men, who are but grass.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두려워하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여기 ‘죽을 사람’은 마치 풀같이 시들어 버리는 인간의 생명을 가리키고
‘풀같이 될 인자’는 일시적으로는 득세하나 결국은 풀의 꽃처럼 사라지고마는
인간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구원자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나’를 두 번 거듭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반복되는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그의 백성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나타내신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위로를 받는 우리들은 사단이 다스리는 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세력이 위협한다 할지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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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0) 말씀 묵상 (이사야 51장7절, Isaiah 51: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Hear me, you who know what is right,
you people who have my law in your hearts:
Do not fear the reproach of men or be terrified by their insults.
 
이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사모하여 율법대로 살아가고자 힘쓰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특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뜻합니다.  이제 바벨론 포로 사건을 놓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조롱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위기의 때, ‘의를 아는 자들’은 여호와의 언약적 신실성을 확신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어떠한 비방이나 훼방, 그리고 조롱에도 결코 위축되거나 개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인간들의 어떠한 비난과 조롱과 위협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사역을 끝까지 담당하셨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고자 할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모욕을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런 사람들의 방해에 좌절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를 본받아 구원만을 사모함으로 성도의 본분을 잘 지켜 나갈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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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9) 말씀 묵상 (이사야 49장16절, Isaiah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See, I have engraved you on the palms of my hands;
your walls are ever before me.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켜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신체 가운데 손바닥은 자주 쉽게 들여다 볼 수 있게끔 
가까이 있는 것이란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는 이 표현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계속 시선을
떼지 않으시겠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부터 멀리
계시거나 무관심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을 기억하시는 것도 몸에 문신을 새기듯이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지워지지 않거나 변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기억하심에 대해 신약에서는 여러 곳에서 인을 친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혼자가 아니고 보호받고 있음을 알고 당당하고
힘찬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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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8) 말씀 묵상 (이사야 49장15절, Isaiah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Can a mother forget the baby at her breast
and have no compassion on the child she has borne?
Though she may forget, I will not forget you!
 
자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승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분의 사랑은 가변적인 인간의 사랑과 달라서 당신이 택하신 
자녀들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인륜이 땅에 떨어지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가끔 자녀들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을 베풀지
못하거나 어머니로서의 임무를 포기해 버리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시
이방 부모들 가운데는 형편상 그의 어린 자녀를 버려서 죽어가게 하는 자들이 간혹 
있었다고 합니다. (돈 때문에 노예로 파는 경우도 있었음)
 
그러므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은 영원한 것임을 깨닫고, 신뢰함으로
우리 삶에 어떠한 어려움과 굴곡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불평하는 대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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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7) 말씀 묵상 (이사야 49장13절, Isaiah 49: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Shout for joy, O heavens; rejoice, O earth;
burst into song, O mountains!
For the LORD comforts his people
and will have compassion on his afflicted ones.
 
‘하늘이여 노래하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생물인 자연을 그의 성가대로 부르신 모습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 사역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서 천지 만물이 그분의 섭리에 화답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그 중에서도 ‘산’은 하나님의 사역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이런 발상은 팔레스타인 고지에 사는 사람이나 갈릴리 북쪽에 있는 헬몬산과 
레바논의 높은 언덕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런데 여기 ‘위로’란 단지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베푸는 선한 말이나 행동이라기
보다는 ‘죄 사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그 백성을 메시야를 통하여 구속하시는 근거는 그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그의 백성’이란 바로 하나님이 언약하신 바로 그 백성이란 의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는 백성과 
제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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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6) 주일입니다.

오늘은 2월 첫째 주일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새일을 행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심령이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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