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23) 말씀 묵상 (마태복음 7장21절, Matthew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not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only h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예수님은 행위의 결과가 없는 믿음이 구원에 합당한 것이 아님을 단호히 선포하십니다.
놀랍게도 ‘주여 주여 하는 자’는 선지자의 일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권능을 행한 사람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고
당연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예수님의 기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입술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주의 이름으로 타인을 섬기고 대접하는 자들에게 예비 된 곳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갈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입술로만 고백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주지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우리들도 주님의 말씀을 삶으로 행하며,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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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2) 말씀 묵상 (마태복음 7장17절, Matthew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Likewise every good tree bears good fruit,
but a bad tree bears bad fruit.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말이 아니라 행위로
나타나는 열매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만 풍성하고 행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거짓 신앙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열매라는 은유는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열매가 나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나무가 열매를 결정하듯이, 행위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자라면 당연히 행위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열매로 나타납니다.
세상에 진짜 같은 짝퉁들이 많은 것처럼, 신앙에도 가짜들이 많습니다.
가짜 신앙인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명심함으로 신앙을 분별하고 가짜에게 속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들의 행위의 열매를 보고
판단할 수 있기 위해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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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1)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15절, Matthew 6: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But if you do not forgive men their sins,
your Father will not forgive your sins.
이 구절은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 자는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라 할지라도 그로부터 용서받을 자격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기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바로 그것을 형제에게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황금률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얻고자 하면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원하면 먼저 형제와 화해해야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기 원한다면, 이웃의 잘못을 먼저 용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함을 받은 것처럼,
우리들도 주 안에 있는 형제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랑의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쉽지 않지만 기도하며 순종하도록 자신을 죽이기를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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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0) 주일입니다.
오늘은 온전한 마음으로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여전히 환경은 어렵고 압박과 방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이기에 힘써
영생을 허락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드리고
선포되는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하고 회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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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9) 말씀 묵상 (마태복음 5장22절, Matthew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But I tell you anyone who is angry with his brother will be subject to judgement.
Again, anyone who says to his brother, ‘Raca’ is answerable to the Sanhedrin.
But anyone who says, ‘You fool!’ will be in danger of the fire of hell.
예수님은 살인의 근원은 분노라고 말씀합니다.
즉 사람이 살인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더 나은 의를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에 대하여 분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악한 분노는 우리에게서 형제들과의 친분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마저도 훔쳐가
버립니다. 형제에게 ‘라가’ (골빈 놈)라 해도, 미련한 놈이라고 해도 심판을 받게 되고,
공회에 잡혀가거나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굉장히 무서운 말씀이기에 이러난
분노에 대해 우리는 솔직하게 대처해야 하며 그것이 죄가 됨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형제, 자매를 대할 때, 상대의 인격을 경멸하거나 욕하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리석은 놈’ ‘미련한 것’ ‘골빈 놈’ ‘추악한 녀석’ 등과 같은 상대방의 인격에
참혹한 상처를 입히는 천박한 말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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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8) 말씀 묵상 (마태복음 5장16절, Matthew 5:16)
이같이 너희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praise your Father in heaven.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며, 그의 사명은 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서 독특한 행실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즉 제자들이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착한 행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나타내는 모든 의를 행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 빛을 보도록 해야 합니다. 혹시 그것 때문에 박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박해를 두려워해서 빛을 감추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빛을 비추고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제자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신자라는 이름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갖고 있는 복음의 빛을 안 믿는 사람들에게 비추어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는 물론,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을 밝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빛을 발함에 있어 부족한 곳은 어디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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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7) 말씀 묵상 (마태복음 5장13절, Matthew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by men.
주님은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세상의 소금이기에 그에 걸맞게 맛을 내야 합니다. 여기서 ‘맛’은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행실을 가리키는 바, 적어도 산상수훈의 명령대로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소금의 특징적인 기능은 부패를 막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들을
부패에서 보존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한 소금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즉 소금은 자신이 녹아짐으로 여러 음식물에 짠맛을 공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여 그 순수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소금의 직분을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회의 부패
여부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에서 최소한 법과 도덕을 지킬뿐만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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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6) 말씀 묵상 (마태복음 5장9절, Matthew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화평하게 함은 긍휼히 여김에서 비롯한 성품으로 그리스도인이 형제를 불쌍히 여길 때
갖게됩니다. 단순히 유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화목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화목, 인간과의 화목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불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호를 갖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화평하게 하는 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손해 볼 줄도 아는 지혜와 용기와 사랑이 필요하며
그것들을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합당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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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5) 말씀 묵상 (이사야 44장2절, Isaiah 44:2)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나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This is what the LORD says- he who made you,
who formed you in the womb, and who will help you;
Do not be afraid, O Jacob, my servant, Jeshurun whom I have chosen..
선지자는 서로 상반된 뜻을 지니고 있지만 돌일하게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는 두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야곱’이란 명칭은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여수룬’이라는 말은 ‘의로운 자’
혹은 ‘정직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상반되 이름을 통하여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속이는 자’로서 죄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의 수혜자이며 대속적 목적을 담당할 존재임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와 같은 명칭으로 부르신 것은 그 백성들이
과거에 받은 은총에 의해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부족할지라도 어려움에
처할 때, 그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실패와 손실이 두려워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끝까지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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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4) 말씀 묵상 (이사야 43장7절, Isaiah 43:7)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everyone who is called by my name,
whom I created for my glory,
whom I formed and made.
여기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자’들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로서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 특히 이 땅 위에 그의 택한 백성을 두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이것은 에베소서의 한 구절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5-6)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단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창조하시고 또한
당신의 이름으로 불러 주셨는데 이것은 인간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존재 목적이 곧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임을 깨달은 대로
정직하고 신실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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