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23) 말씀 묵상 (사도행전 20장24절, Acts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if only I may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spel of God’s grace.
 
바울은 일사각오의 신앙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급히 가려고 했습니다.  이미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결박과 환난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생명을 건 복음의 사명자였습니다.  달려갈 인생길이 곧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생명은 주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생명을 내건 각오를한 사람이 증거하는 복음에 어찌 능력이 없겠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사명자라고 확신하며 생명을 내건 각오와 열심은 반드시 결실을 맺습니다.  그렇다고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바로바로 믿게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한다는 말입니다.  복음은
생명으로 생명을 전하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복음을 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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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2) 말씀 묵상 (사도행전 13장22절, Acts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After removing Saul, he made David their king. He testified concerning him:
“I have found David son of Jesse a man after my own heart;
he will do everything I want him to do.’
 
인간의 요구로 세워진 왕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세워진 왕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1천여 년이 지난 후 구주이신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이런 선언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혈통으로 부터 구세주를 세우셨다는 기본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선언하는 약속의 암시는 선지자 이사야가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야가 날 것, 즉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사 11:1)와 그의 의로우신 통치 및
그의 승리 그리고 그의 나라를 세우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구속하시기
위한 상징적인 예표로 다윗을 세웠고 그 혈통을 통하여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음을 알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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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1) 말씀 묵상 (사도행전 11장21절, Acts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The Lord’s hand was with them, and a great number of people believed and turn to the Lord.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거짓 신을 버리고 참 신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사랑하는 데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향해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께 그의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향해 바라보는 자는 죄에게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의 어리석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이킬 때 그것이 진정한 회심입니다.  사람들이 돌이킬 때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이 보실 때 회심의 눈물과 통회하는 심령의 탄식은 보배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그들의 전 인생이 하나님께로 향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며, 하나님과
친근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이 계신 곳에 영원토록 거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주님께로
돌아갑니까?  아니면 여전히 내 뜻과 내 길로 고집스럽게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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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0) 말씀 묵상 (이사야 10장15절, Isaiah 10:15)

두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른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Does the ax raise itself above him who swings it, or the saw boast against him who uses it?
As if a rod were to wield him who lifts it up, or a club brandish him who is not wood!
 
이사야 선지자는 잘 알려진 격언을 사용해서 앗수르의 안하무인격인 방자함과 오만함을 고발합니다.
앗수르의 교만과 자랑은 마치 도끼가 그 도끼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톱이 그 톱을 사룡하는 사람에게
뽐내며 으시대는 것과 같습니다.  도끼와 톱은 스스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의 의지에 종속된
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도구가 저를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를 거스르며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질서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지상의 권력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분에 의해 주어진 역할(한계)을 담당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자족할 줄 모르는
권력의 교만을 언젠가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힘이 없기에 힘으로 대항하지 못하지만
때가 되면 그 분이 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그 때까지 진리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면 됩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믿음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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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9) 말씀 묵상 (사도행전 1장8절, Acts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이 구절은 사도행전 전체의 지리적 확장에 따른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예루살렘,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  로마는 ‘땅 끝’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사도행전의 땅 끝은 선교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사도(제자)들이 받게 될 성령의 침례(세례)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이 베푸시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2:33) 이것은 성령의 침례를 받게 될 사도(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특히 부활의
증거는 증인들의 핵심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누가복음을 넘어 사도행전으로 이어지고 또 사도행전을 넘어 교회 역사로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그 연장선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을 전함으로
신 사도행전을 써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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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8) 말씀 묵상 (이사야 2장12절, Isaiah 2: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The LORD Almighty has a day in store for all the proud and lofty,
for all that is exalted (and they will be humbled).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면서 동시에 심판의 날입니다.  그 날은 이스라엘의 교만과 자만을
심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시는 날입니다.  이 날은 그들이 자랑하고 의존하던
것들이 완전히 꺾여서 그 실체와 한계를 드러내는 날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외적인 번영과
업적에 도취되어 이를 가능하게 해 주신 분을 저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의
능력과 힘을 올려 놓았습니다.
 
교만한 인생과 그의 모든 결과물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처첨하게 무너지게 될 것이기에 우리는
절대로 인생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진 것으로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시편 146:3)
 
모든 인생에게 임할 마지막 심판의 때에 교만한 인생, 거만하고 자고한 자는 수치와 파멸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주이신 예수님만을 믿고 겸손히 따라가는 제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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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17) 주일입니다.

오늘은 주일이기에 섬기는 교회에 나아가 예배를 드리며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예배 가운데 만나시고
치유와 회복과 결단과 채움이 있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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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6) 말씀 묵상 (이사야 1장18절, Isaiah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Come now,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하나님의 ‘돌아와 나와 함께 변론하자’는 초청에 성도가 회개함으로 순응할 때 하나님은 복을
허락하십니다.  회개를 통해 주어지는 축복은, 성결함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그것을 내어 놓고 진심으로 회개할 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입니다.  단, 회개의 진의는 그 분만이
판단하십니다.
 
죄의 대가로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생명의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께는 정죄보다 용서가 우선이기에 우리와의 관계를 단절하시기보다 화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은 완고하게 제 길을 떠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십니다.  그 분에게 용서의
조건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에서 떠나 회개하여 하나님과 맺은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그 분의 자비로우신 초청에 진정으로 응하여 용서와 깨끗함을 받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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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5) 말씀 묵상 (이사야 1장12절, Isaiah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When you come to appear before me, who has asked this of you,
this trampling of my courts?
 
선지자는 제사 제도를 원칙적으로 부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제사의 근본적 의미에 대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가 과연 어떤 제사인지를 다시 생각헤 보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연례적인 절기를 맞아 성전을 방문해 예물을 드리므로 제사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 이들의 경건은 형식과 위선에 불고할 뿐입니다.  이들은 단지 성전 뜰을 밝기만 할
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의무를 그저 예물로 대체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예배의 영역 안에 가둬 버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예배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그 분과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예배를 제외한 다른 영역에서 추방시키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며, 그 분의
의지에 일치하는 총체적인 예배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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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4) 말씀 묵상 (사도행전 10장16절, Acts 10: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This happened three times and immediately the sheet was taken back to heaven.
 
사도행전 10장을 쭉 보면 하나님이 베드로 한 사람을 깨닫게 하는데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오고
온갖 시청각교제를 다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요.  그러나 이방인
로마 백부장 고넬료를 깨닫게 하는데는 상대적으로 너무 쉬운 모습을 봅니다.
 
요나서에서도 니느웨 백성을 회개시키는 것은 한 순간이었는데 요나 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요나서 전체를 할애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시대에 가장 변화하기 힘든 사람은
저 미 전도 종족이 아니라 바로 몇 십년을 교회 다녀도 변하지 안는 우리라는 겁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을 사랑하다고 말하지만 성경 하나 읽는 것도 너무 지겹고 기도 한 시간 하는 것은
더 더욱 힘들어 합니다.  한 번도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해보지도 않고 자신도 안 변하고…문제가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좁은 시각과 편견을 깨고 행함으로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 깨닫고 누리는 우리가 되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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