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23) 주일입니다.

오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악용하여 교회도 핍박을 받는 때이지만
그럴수록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선포되는 말씀 속에서 지혜와 힘을 얻고 은혜를 덧입어
한 주간 동안도 넉넉히 세상을 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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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2) 말씀 묵상 (잠언 3장12절, Proverbs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신느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because the LORD disciplines those he loves,
as a father the son he delights in.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축복과 형통함이란 등식에 익숙해 져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버지적 사랑은 곧 하나님의 징계와 꾸지람이라는 역설적 등식으로
묘사함으로, 또 다른 하나님의 섭리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 사용된 ‘징계’는 단순한 흔계의 의미보다는 물리적인 제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곧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그 안에서 떠나지 말 것을 교훈하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그것을 받는 자가 파멸하도록 함이 아니라,
궁극적인 선과 유익을 위한 사랑의 한 표현입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를 통한 사랑’에 대한 진리를 알게 될 때,
징계에 의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며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징계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 돌아가는 자녀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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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1) 말씀 묵상 (잠언 3장6절, Proverbs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in all your ways acknowledge him,
and he will make your paths straight.
 
여기 사용된 ‘인정하다’는 단어는 ‘알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야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하나님께 대한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순종과 통찰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실제적이고 체험적인 하나님 지식을 의미합니다.  즉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범사에 하나님의 지도와 조명을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행하는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의 길을 바르게 하고 평탄하게 하며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극복하게 해주시고, 갈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뜻을 인생의 목적으로 여기며,
자신들의 의지를 그 뜻에 복종하는 데서 하나님의 길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범사에 무엇을 하든지 방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도와 조명을
구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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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0) 말씀 묵상 (골로새서 4장6절, Colossians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Let your conversation be always full of grace, seasoned with salt,
so that you may know how to answer everyone.
 
바울은 불신자들과 교제하거나 복음을 전할 때 은혜 안에서 맛갈 난 말로 대화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도는 믿지 않는 분들과 구별된 존재이지만 그들과 완전히 단절된 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과 교제를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불신자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친절과 관용의 언어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라는 은유는 재치와 기지가 담긴 언어를 묘사합니다.
불신자들이 신자들에게 그들의 믿음과 생활에 대해 질문할 때 은혜 안에서 친절한 말로
응대하다 보면 그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불신자들의 세속적인 삶에 물들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교제를 나누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믿은 자의 의무)
그러기 위해서 그들과 은혜롭고 지혜로우며 재치있는 말로 대화함으로 전도의
기회를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만남과 교제를 위해 기도로 시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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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9) 말씀 묵상 (골로새서 4장1절, Colossians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Masters, provide your slaves with what is right and fair,
because you know that you also have a Master in heaven.
 
이 구절은 상전(주인)들에게 종(종업원)에 대한 대우의 문제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 ‘의’는 주인이 종에게 보여 주어야 할 도덕적인 건전함을 의미하며’
공평’은 주인이 종에게 베풀어야 할 혜택의 공정한 분배를 가리킵니다.
그 당시 로마의 관습에는 주인이 종을 공평하게 대해야 할 의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종들을 향한 의와 공평을 상전들의 의무로 규정합니다.  그 이유는
상전들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전들이 종들을 학대하면
하늘에 계신 주님이 상전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권면은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말한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곧잘 일어나는 노사 분규나 갑질은 여기서 언급한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데서 발생합니다.  일하는 자가 성실하게 일하고 임금을 주는 자가
공정하게 보상한다면, 비생산적인 노사 분규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에 맞게 공정과 공평을 행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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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8) 말씀 묵상 (골로새서 3장23절, Colossians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Whatever you do, work at it with all your heart,
as working for the Lord, not for men.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순종이 꼭 필요한 요소로 언급됩니다.
왜냐하면 순종은 창조주와의 관계 속에서 피조물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반대는 교만으로, 피조물인 인간이 늘 조심해야 할 근원적인 죄입니다.
 
바울은 이 순종의 덕목을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넘어서 모든 관계 속에서 실행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순종은 상호 평등의 순종이며,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고,
또한 이 모든 순종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사회에서 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촉매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한 의무를 신실하게 수행할 때, 그것은 단순히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것이 됩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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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7) 말씀 묵상 (골로새서 3장17절, Colossians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And whatever you don, whether in word of deed,
do it all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through him.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삶의 모든 부분, 즉 언어생활과 행동을 일컫는 삶의 전 
영역에서 주 예수의 이름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며 그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 경배 그리고 감사는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사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은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자들이며, 그분의 권위와 능력을 의지해 기사를 행할 수 있는 사역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면 우리는 종입니다.
그렇다면 주 예수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고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행위들을 통해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는 것이며, 그분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추구하며 애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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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16) 주일입니다.

오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기뻐 흠향하는 예배를 드림으로
하늘문을 활짝 여시고 폭포수와 같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덧입는
복된 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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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5) 말씀 묵상 (골로새서 2장12절, Colossians 2:12)

너희가 세례(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having been buried with him in baptism 
and raised with him through your faith in the power of God,
who raised him from the dead.
 
그 당시 거짓 교사들은 육체의 할례를 통해 완전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육적인 몸을 벗는 것, 즉 그리스도의 할례를 침례(세례)라는 은유를 통해 재설명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할례,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완전해집니다.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부활함을 상징하는 침례를 통해 죄의 본성은 죽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즉 성도들은 침례를 통해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을 입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그것은 현재적으로 새 시대의 부활의 삶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 안에 거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특권인지 모릅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체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그 확신으로 산다면, 날마다 우리의 삶이 새로운 필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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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4) 말씀 묵상 (골로새서 1장14절, Colossians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sins.
 
여기 ‘속량’이란 말은 노예나 전쟁 포로가 응분의 값을 치루고 풀려 날 때 사용되던
용어입니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속량을 ‘죄 사함’이라고 정의합니다.
원어적 의미로는 ‘놓아 보냄’을 뜻합니다.  본래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
그로 인해 사망의 포로가 되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상황을 ‘죄 아래 팔렸다’는 말로 묘사했습니다. (롬 7:14)
죄 아래 팔린 인간이 구속 (속량) 곧 자유함을 받으려면 그에 상당하는 속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속량할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속전으로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나라의 백성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속량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늘 은혜에 감사하며 또한 은혜를 나누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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