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0/20) 말씀 묵상 (누가복음 12장34절, Luke 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왕이신 주 예수님의 다스림을 구한다는 것이며.
기쁨으로 그 분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뜻을
따라 자기 소유를 사용합니다.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쌓는 것이요,
하나님에 대해 부요한 자가 되는 삶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보존되어 후에 다 보상을 받습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은 무엇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것을 소망합니까? 흔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나 신분 상승이나 더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보물을 자신을 위해 쌓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을 좇는 삶입니다. 즉 그 마음이
자신 혹은 이 세상에 있는 삶입니다. 우리 보물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의 보물을
하나님께 두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10/19) 말씀 묵상 (누가복음 10장36-37절, Luke 10:36-37)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Which of these three do you think was a neighbor to the man who fell into the hands of robbers?
The expert in the law replied, ‘The one who had mercy on him.’ Jesus told him, ‘Go and do likewise.’
우리에게 이웃은 누구인가? 우리가 사랑할 만 하거나, 우리에게 선대하거나, 우리와 신앙적 성향을
같이하는 사람으로, 우리의 이웃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이웃 사랑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웃 사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긴급한 도움을 주는 것이며,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적극적으로 평강을 누리도록 돕는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내게 위험한 일이라 할지라도 또한 경제적인 손실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행하는
것이 바로 참된 사랑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실제로 시간과 돈과 정욕을 소모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개인주의는 성도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지체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서서 주님의
사랑을 나누십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의 시작입니다.
Read more...
오늘의 (10/18) 말씀 묵상 (누가복음 7장38절, Luke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and as she stood behind him at his feet weeping, she began to wet his feet with her tears.
Then she wiped them with her hair, kissed them and poured perfume on them.
예수님이 계신 곳에 불쑥 찾아온 여인은 그 동네에서 죄인으로 알려진 여인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고 향유를 담은 비싼 옥합을 가지고 온 겁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으며,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은 행동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과
감사의 표현이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충격적인 것입니다.
신자의 삶과 교회의 제일 되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자로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마땅히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이 때 드리는 감사와
예배는 예수님께 나아와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마음과 소유 전부를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사해 주시고 구원을 주신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며 충분히 예배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형식적이고 억지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전부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립니까?
Read more...
오늘의 (10/17)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4장6절, Galatians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Because you are sons, God sent the Spirit of his Son into our hearts,
the Spirit who called out, ‘Abba, Father.’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율법에 종노릇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율법의
짐으로 신음하는 인생이 아니라 자유한 인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로서, 하나님의 유업을 얻은 상속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한 보장을 누리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후견인인, 율법 아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 덕분에 우리 인생은 구원과 자유의 길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의 시간이 도래했는데도 종과 다름 없는 인생을 산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자요
상속자로 풍성한 인생을 사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10/16)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2장16절, Galatians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다.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observing the law,
because by observing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복음의 핵심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자유를 누리게 된 사람들이 마치 이방 죄인들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자리를 피하는 위선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율법의 행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요, 마치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율법에 대해 죽었다고 선언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대해 사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이고, 또한 그 은혜가 주는 자유함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은 후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거나, 이전 것에 대한 미련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바라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는 은혜의 법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매일 죄에서 자유한 자로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까?
Read more...
오늘의 (10/15)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1장10절, Galatians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Am I now trying to win the approval of men or of God? Or am I trying to please men?
If I were still trying to please men, I would not be a servant of Christ.
종은 주인을 위해 일하는 존재입니다. 이 목적의식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또한 보냄을 받은 사람은
자신을 보내신 분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자신을 보내신 분이 바로 자신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분명히 정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목적에 맞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Read more...
오늘의 (10/13) 말씀 묵상 (시편 24편8절, Psalms 24: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Who is this King of glory?
The LORD strong and mighty , the LORD mighty in battle.
시인은 예배자들의 자세를 설명하는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들어가실 문을 열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즉 영광의 왕,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께서 성도들 중에 임재하실 떄에 성도들이 마음의 문을 열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을 영접한 성도라도 주님이 자신의 인생 가운데 들어오셔서 왕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
문을 활짝 열라고 요구하실 때,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전적인 주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입술로 주님을 ‘왕’으로, ‘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주님의 전적인 통치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적지 않은 분야에서 여전히 우리 자신이 왕이 되고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합니다. 즉 이 ‘주권’이 (Lordship)
잘 되지 않아서 주님 뜻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할 떄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주 하나님의 연단을 받으며 또 예비하신 신령한
복들도 누리지 못할 떄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에서 좌정하게 하시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고
영광의 왕의 온전한 통치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Read more...
오늘의 (10/12) 말씀 묵상 (시편 23편4절, Psalms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양 때가 험한 산길에서 빠질 수 있는 좁고 위험한 계곡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골짜기를 다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주께서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를 안위하기 때문’입니다. 지팡이는 긴
나무로, 장애가 되는 가시나무를 헤치거나 양 떼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를 때 지지대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막대기는 작고 짧은 단단한 곤봉 같은
것으로, 맹수나 강도들로부터 양 떼를 보호하는데 사용합니다. 목자는 양 떼와 언제나 함께 하면서
그들을 위해 싸우기도 하고 안전한 길로 인도합니다.
시인의 고백을 들으면서 우리도 이런 고백을 사심없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갈수록 더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적대적인 오늘날의 현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닌지. 그런 가운데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주님을
날마다 체험하는 믿음의 삶이 되십시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