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7/10)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Therefore, having been justified by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바울은 1-4장까지를 통해 ‘사람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논리를 전개해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렇게 된 사람들이 사는
새로운 삶의 차원을 전개하는데 그 첫째는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누리자’는 ‘갖다, 소유하다’는 의미로 여기서는 지속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리자’는 청유법보다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다’는 직설법이
훨씬 더 적절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 죄로 인해 진노 아래에 있었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용서를 얻어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고 영생을 얻었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죄책감과 도망자처럼 살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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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9) 말씀 묵상 (시편/Psalms 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Purify me with hyssop and I will be clean;
Wash me and I shall be wither than snow.
용서란 무엇인가? 그냥 말로 용서한다고 하면 완전히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음을 우리 스스로가 잘 압니다. 용서했고 용서받았다고 하지만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는 피해 의식이나 적대감의 모든 쓴뿌리를 모두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겸손히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회개하는 사람의
이전 잘못을 말끔히 지워서, 없는 것으로 여기십니다. 범죄한 다윗은 제사장이
정결의식을 수행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그런 용서를 기대하며 간구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중심의 진실함으로 죄를 뉘우치는 마음입니다.
자신이 용서받을 가치가 없는 죄인임과 하나님의 용서 외에는 어떤 희망도 없음을
고백하며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면
모든 죄는 말끔히 지워집니다. 그러니 정죄감에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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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8) 말씀 묵상 (시편/Psalms 51: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Deliver me from bloodguiltiness,
O God, the God of my salvation;
Then my tongue will joyfully sing of Your righteousness.
다윗의 범죄를 배경으로 하는 시로, 그는 권력을 이용해서 간음과 살인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덮어두고 회개도 하지 않다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사
들추니 그때서야 자복했습니다.
다윗은 ‘피 흘린 죄’에서 자신을 건져주실 것을 구하는데 이는 단순히 피를
흘리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피흘리게 한 일로 인한
징계에서 벗어나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묻고 믿고 따라갔던 그였지만
그분을 떠나자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고
그는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갔지만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러야먄 되었습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제사는’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떠나면
실족하지만 회개하고 돌아가면 용서받습니다. 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치러야 할 대가는 크고, 그 사람의 위치에 따라서도 대가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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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7) 7월 첫 주일입니다.
2024년 후반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선포되는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남은 한 해를 승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용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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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6)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did not send the Son into the world
to judge the world,
but that the world might be saved through Him.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영생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충하는 구절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점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으면 영벌에 떨어지겠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사람에 대한 심판입니다. 물론 믿을 수 있는 기회는 계속
주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한 사람이기에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지금도 손을 내미시는 그분의 손을 잡아 구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이미 얻은 사람은 사랑에 감사하며 그분께 영광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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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5) 말씀 묵상 (출애굽기/Exodus 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Moses said to the people,
“Do not be afraid; for God has come in order to test you
and in order that the fear of Him may remain with you,
so that you may not sin.”
십계명 바로 뒤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 때 일어났던 우뢰와 번개와 지진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며 하나님의 임재의 목적에 대해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목적은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고 경외하게 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물론이고 평소 어디서 무엇을 하든 거룩하시고 위엄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늘 자각하고 지낸다면 두려운 마음으로 죄에서
떠나 구별된 삶을 살려고 애쓰게 될 것입니다.
늘 주님 앞에 서 있는 (코람 데오) 예배자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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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4) 말씀 묵상 (이사야/Isaiah 40:29)
피고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He gives strength to the weary,
and to him who lacks might He increases power.
심판에 이어 (39장까지) 회복에 대한 말씀을 전하면서 선지자는 하나님을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표현합니다. (28절) 그 말은 피곤하고
곤고한 야곱/이스라엘이 소망을 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혈기왕성한 젋은이들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며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지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당신이 소유하신 지치지 않는 새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삶에 고난과 낙심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라도 환경을 바라보며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를 바로 알고 그분을 의지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마치 독수리가 단숨에 지상에서 창공으로 날개 쳐 오르듯이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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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3)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2:20)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So you will walk in the way of good man,
and keep to the path of the righteous.
저자는 지혜가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준다고 말합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결국 땅에서 끊겨지겠지만, 정직한
의인들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악인의 길을 떠나 의로운 길을 걸으며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지혜를 반드시 얻어야 합니다.
지혜를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되게 사용하여 해를 끼치게 됩니다. 바른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기에 그분이 주신 말씀대로 행하면 얻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또한 잘못된 길로 가면 다시
바른 길을 알려줍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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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2)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1 Peter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Beloved, I urge you as aliens and strangers
to abstain from freshly lusts which wage war against the soul;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인해 핍박을 받아 피해 다니는 성도의
신분을 거류민과 나그네로 부릅니다.
‘거류민’은 낯선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민자와 같은 신분을 가리키며
‘나그네’는 일시적으로 한 지역에 머무르는 외국인을 뜻합니다.
즉 성도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국적은 하나님 나라로, 이 땅에 임시로
머물러 있다가 결국에는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신분으로 살아가지만 성도는 영혼과 전쟁을 일으키고 파괴하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대신 선한 행실을 따르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주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조롱과 핍박을 탓하며 좌절하지 말고 오히려 거룩한 삶으로
위기를 기회로 삼아 복음을 전하는 승리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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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 말씀 묵상 (에베소서/Ephesians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But immorality or any impurity or greed
must not even be named among you.
as is proper among saints;
사도 바울은 성도의 삶과 불신자의 삶을 비교하면서 권면의 말씀을 전합니다.
‘음행’은 각종 성적인 부도덕을 뜻하고
‘온갖 더러운 것’은 모든 성적 도착을 포괄하며
‘탐욕’은 맥락상 타인을 성적인 도구로 삼고자 하는 욕망을 뜻합니다.
그런 것들을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는 것은 조금도 허용하지 말라는 강한
금지 표현인데 그렇게 하는 것이 성도에게 마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으로 가득하고 어리석고 희롱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리스도인은 그런 삶과 구별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그런 자리를 피해야 하며 입술에 감사와 찬양과 말씀이 있으면
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몸이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에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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