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8/25) 말씀 묵상 (히브리서/Hebrews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것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Nothing in all creation is hidden from God’s sight.
Everything is uncovered and laid bare
before the eyes of him to whom we must give account.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숨겨진 상태로 있을 수 없어, 오히려 모든 것이 그분의
눈앞에는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즉 언젠가 누구도 예외 없이 우리가 모든
것을 결산해야 할 시점이 될 때, 하나님의 눈앞에 만물은 다 그처럼 노출되게 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가리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함과 실수와 허물을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다 내어 놓으면 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며, 우리의 죄를 덮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사람들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보고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의 능력을 믿으며 은혜의 보좌 앞에서 그분의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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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4) 말씀 묵상 (히브리서/Hebrews 3: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do not harden your hearts as you did in the rebellion,
during the time of testing in the desert,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무던히도 하나님을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기적을 수없이 경험하고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리지 않고 거역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완고했고, 그들의 완고함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왔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독자들인 우리들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행로를 걷게
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혹시 오늘의 독자들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역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해두신 축복을 잃게 될 것을 염려하여 이 구절을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개인적인 완고함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이 구절의 경고를 듣는 우리는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소망과 헌신을 견고히 붙들 뿐만 아니라 주님을 따를 때 치러야 할 대가도 있음을 알고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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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3) 말씀 묵상 (히브리서/Hebrews 3: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But Christ is faithful as a son over God’s house.
And we are his house,
if we hold on to our courage and the hope of which we boast.
모세가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로서 충성을 다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실하게 충성을 다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역시도 예수님의
본을 좇아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맡겨진 사역에 온전히 신실함으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성도는 신실한 인도자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신실한 인도자와 신실한
성도가 행복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끝까지 붙들어 예비된 결승점에 도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다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기복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신앙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흔들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끝까지 굳게 잡아야 할 대상은 흔들리는 세상
가치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늘 그분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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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2) 말씀 묵상 (히브리서/Hebrews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Because he himself suffered when he was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being tempted.
이 구절에는 세 가지 묵상점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둘째, 그 고난은 시험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 고난이 주는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참아낸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기에 시험이었습니다.
셋째, 고통을 견디신 것을 통해 그분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와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시험의 험준한 산령을
넘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히 시험과 고난을 당하신 주님은, 시험받는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분께 어떤 것이든 내려놓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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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8/21) 주일입니다.
오늘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예배 드리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림으로 큰 은혜를 받아
회복과 치유와 소망이 풍성한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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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0) 말씀 묵상 (디도서/Titus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향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He gave himself for us
to redeem us from all wickedness and to purify for himself a people
that are his very own , eager to do what is good.
이 구절의 시작을 정확히 표현하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희생은 심판에 대한 대속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탄과 죄로부터의
구속 (속량, 해방), 그리고 도덕적 성화의 삼중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고 강변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적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속하시고, 또한 깨끗하게
하셔서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말함으로,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을 속전 (ransom)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에수님은 자기 목숨을 속전으로 지불하시고 성도들을 구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언약백성으로 삼으신 것처럼,
예수님은 성도들을 속량하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속의 은혜를
입고 깨끗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백성이 된 자들의 마땅한 삶의 자세는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얻은 사람들은 선행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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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9) 말씀 묵상 (디도서/Titus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For the grace of God that brings salvation has appeared to all men.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드러난 구원의 은혜를 일컫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죄인을 부르시고, 택하시고, 의롭다 여겨주시고, 용서하시고, 화해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는 원래 감추어져 있었는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나타내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철학이나 도덕이 아니며, 종교적인
행위나 열심도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길은 지속적인 자기 변화를 통해 가능합니다. 자기 변화는 하나님의 은헤를
받은 자에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고 있으면 우리 자신도 변하고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 안에 거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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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8) 말씀 묵상 (사무엘하/2 Samuel 22: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With your help I can advance against a troop;
with my God I can scale a wall.
여기 ‘내가 주를 의뢰하고’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안에서’ 입니다.
즉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었으므로 적군을 물리칠 수 있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대 역사에서 빨리 달리는 것은 그가 가진 힘과 능력 못지 않게 용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건이었습니다.
성벽은 적의 요새지의 최후 방어선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뛰어 넘었다고
하는 말은 다윗의 통쾌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에게 필요한
힘과 용기를 얻으므로, 자신에게 닥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대처해 나감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주를 의뢰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시기에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와, 해야 할 일을 아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나아갈 때, 말씀 자체가 능력으로 우리 삶을
인도하여 축복을 누리게 해주니 말씀 안에 거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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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7) 말씀 묵상 (사무엘하/2 Samuel 22:17)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He reflected down from on high and took hold on me;
he drew me out of deep waters.
여기 ‘위에서’란 하나님의 초월성과 지존성을 나타냅니다. 즉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 위로부터 강림하셨음을 간증합니다. 다윗은 지존하신 하나님의 강림으로
인해 자연계가 요동하고 악인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순간에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바라본 것입니다.
‘많은 물’이란 ‘사망의 물결’ 혹은 ‘불의의 창수’와 같은 죽음의 위험과 재앙을 가리킵니다.
곧 주위 사방에서 사나운 파도와 같이 대적의 세력이 밀려올 때에도, 다윗은 신앙의 눈으로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우리를 기뻐하시기에, 우리가 처하는 위험과 어려운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셔서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는
비록 미약한 존재이지만,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강하고 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내미는 손을 꼭 붙잡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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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6) 말씀 묵상 (사무엘하/2 Samuel 22:7)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In my distress I called to the LORD, I called out to my God.
From his temple he heard my voice,
my cry came to his ears.
다윗은 간절한 기도로써 하나님께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아뢴 후 주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즉 다윗은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 자신이 경혐했던 구원자와의 긴밀한
교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지엄하시고 공의를 따라 철저히 다스리는 분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다윗의 이런 자세는 예외적인 모습입니다.
다윗의 신앙관은,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삶에 찾아 오셔서 그 형편과 처지에 따라
도움과 사랑을 베푸시는 분으로 체험했습니다. (시 50:15 이하) 다윗이 이렇게 구약적인
한계를 떨쳐버리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개인적인 만남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기록된 성경 속의 하나님만 의존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다윗이 만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신앙은 늘상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사모하며 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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