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24)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15장58절, 1 Corinthians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진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사도 바울의 복음의 핵심에는 종말론이 있습니다. 종말론적 신앙은 사람들에게 겁을 주거나 현실 도피적인
환각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기초한 확실한 소망입니다. 사람들은 사라져 없어질 것을 붙잡고 살면서 스스로
현실적이라고 고집합니다. 썩을 것에 매여 더 중요한 것을 희생시키면서 현실적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현실은 누가 하나 예외가 없이 죽음을 맞을 것이고 또한 종말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종말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그날을 사모하는 것은 방향을 바로잡아 현실을 직시하는 가장 현실적인 지혜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성실히 추구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의 실체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또한 각 사람의 행위대로 상도 주십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붙잡느라 애쓰면서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신 본향을 사모하며
영원한 것을 붙잡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허탄한 말과 지식 싸움에 휩싸이지 말고 오직 주의 일에 날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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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3) 말씀 묵상 (사도행전 10장15절, Acts 10: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The voice spoke to him a second time,
‘Do not call anything impure that God has made clean.’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은 국경과 인종과 문화를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속됨과 정결함은 인간의 경험이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모든 판단은 하나님의 몫이므로 인간의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인간 최초의
범죄는 하나님의 판단을 인간이 자기 몫으로 여겨 선악을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복음의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증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의지해 복음 증거의 대상을 결정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온전하게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결정권을 하나님께 드리고 온전히 순종할 때 복음의 역사가 드러날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 보다 앞 선 것은 없는지, 월권 행위를 하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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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2) 말씀 묵상 (사도행전 9장5절, Acts 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Who are you, Lord?’ Saul asked.
‘I am Jesus, whom you are persecuting.’ he replied.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가던 사울은 다메섹에 다 이르었을 때 홀연히 밝은 빛을
보고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땅에 엎드려져 주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 분은 바로 놀랍게도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비추는 분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사울이 들었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설교자의 입을 통해 말씀을
들을 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음성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어떤 일을
하시며, 우리 자신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말씀을 들음으로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역사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사울에게 은총을 베푸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도 하늘의 빛을 조명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들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삶을 이끄시고 도와주십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그 분께 먼저 시간을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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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1) 말씀 묵상 (요한복음 15장12절, John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My command is this;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you.
제자들이 맺어야 할 열매 중의 최고의 열매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표지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과 제자들의 관계, 하나님 집 식구들의 가족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충만할 때 자연스럽게 기쁨이 넘칩니다.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사랑은 아들을 거쳐 제자들에게, 또 제자들 간에 흘러넘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사랑은
멈추지 않고 땅끝까지 흘러가야 합니다. 주님과 연합되어 있는 자는 주님의 사랑을 공급받아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과 같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하면 확실히 예수님의 제자됨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서로 진실된 사랑을 베풀 뿐만 아니라, 사랑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행함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에 속한 자임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사랑의 고귀함을 인정하여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아는 마음 역시 사랑을 나누는 귀한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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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0) 말씀 묵상 (요한복음 15장4절, John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Remain in me, and I will remain in you.
No branch can bear fruit by itself, it must remain in vine.
Neither can you bear fruit unless you remain in me.
나무와 가지의 관계, 즉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안에 거하다’는 표현입니다.
이 관계는 생명을 좌우하는 연합입니다. 가지는 나무를 통해 양분을 섭취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만약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말라비틀어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분의 생명을 공급받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운명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데 달려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된 자는 그 분의 힘으로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즉 선한 열매는 주님께 붙어 있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를 통해, 주님과 연합을 의식하고
그분 말씀을 의지함으로써 맺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운명이 주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믿음을 통해 일생동안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그분께로부터 힘과 능력을 공급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연합한 존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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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9) 말씀 묵상 (요한복음 13장15절, John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do as I have done for you.
예수님께서는 그 분의 자취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즉 주와 선생으로서 아랫사람을 섬기는 본을 보이신 의도를 설명하시면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섬김의 삶을 살 것을 당부하십니다. 남을 섬긴다고 해서 그 사람보다 낮아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원리를 알면 남을 섬길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보냄을 받는 자는 보낸 자보다 결코 우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섬기는 이유도, 섬긴 후의 영광도 모두 예수님께 돌려야 합니다. 섬김을 통해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교주가 됩니다.
우리가 서로 섬겨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먼저 우리에게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시면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순종하면 됩니다. 우리가 타인을 섬길 때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의
보냄을 받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이 행하신 사랑을 동일하게
행하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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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8) 말씀 묵상 (이사야서 44장3-4절, Isaiah 44:3-4)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주리라.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For I will pour water upon him that is thirsty and floods upon the dry ground:
I will pour my spirit upon thy seed, and my blessing upon thine offspring:
And they shall spring up as among the grass, as willows by the water courses.
성경에서 물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는 우상 숭배를
비롯하여 온갖 죄악으로 인해 영혼이 메말라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도, 그 분의 은혜를 목마르게 갈망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의 축복, 영혼의 소나가기, 곧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심으로 영적인 갈증을 완전히 해소시켜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함께 해 주시면, 그 어떤 불신자들보다
뛰어난 백성이 될 수 있음을 믿고 우리 안에 있는 우상부터 제거하는 준비된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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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7) 말씀 묵상 (이사야서 33장2절, Isaiah 33:2)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O Lord, be gracious to us; we long for you.
Be our strength every morning, our salvation in time of distress.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백성과 민족의 위험을 절실히 인식하면서, 그런 상황에서 기도 없이는 구원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예언과 하나님께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은총을 비는 기도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비는 기도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기도로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간절한 기도이기에 타인에게도
본이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을 당할 때 취해야 할 첫번째 태도는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랫동안
지속이 되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흔들리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침마다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그 분은 능력이 무한하신
분입니다.
성도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고하는 군인들과 경찰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민족과 나라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새벽이나 아침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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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6) 말씀 묵상 (야고보서 1장26절, James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If anyone considers himself religious and yet does not keep a tight rein on his tongue,
he deceives himself and his religion is worthless.
이 구절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공중 기도와 금식, 헌금, 예배 참석 등의 외적인 종교 활동에는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람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그런 행동도 중요하지만 혀를 다시를 수 있는 내적인 절제가 그런 외적인 행위와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재갈 먹인다는 표현은 말을 길들이기 위하여 고삐를 달아 제어하는 거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사람의
혀가 고삐나 재갈이 없이는 길들일 수 없는 말에 비유가 되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
내적인 절제 없이 외적인 종교 활동만을 일삼는 사람을 향해 두 가지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는 자기 마음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둘쨰, 그의 경건은 헛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쉽게 발견되는 헛된 경건의 일면은 바로 권위와 경건을 동일한 것처럼 착각하여 행동하는 위선된 모습입니다.
교회 안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보고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는지,,, 모든 문제의 발단은 말에서 시작되기에 말을 삼가는 것은 공동체 생활에서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말을 아끼는 것은 물론 덕이 되는 말을 함으로 공동체를 화목케 하는 일에 앞장서는 경건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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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5) 말씀 묵상 (야고보서 1장22절, James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Do not merely listen to the word,
and so deceive yourselves, Do what it says.
이 구절의 직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입니다. 지속적인 순종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행동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을 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설교를 하나의 흥미로운 윤리적 혹은 신학적 강의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앉아서 듣는 일 이상의 것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은 강의에 참석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강의 내용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 있지만,
강의를 듣고 나서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지식만 얻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듣는 사람이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현대 성도들의 성경에 대한 이론과 자식에 대해서는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적용이나 실천의
빈곤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자기 만족에 빠진 사람일 뿐입니다. 구원을 얻거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풍성한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고 그 분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혹시 사도 야고보의 말씀처럼 행함이 없는 지식만으로 자신을 속이고 자기 만족에 빠진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고 행함이 있는 진짜 믿음을 회복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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