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9/1) 말씀 묵상 (시편 28편9절, Psalms 28: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Save your people and bless your inheritance;
be their shepherd and carry them forever.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 분의 ‘산업’입니다. 시인은 이런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영원토록 업고 가실 것을 간구합니다. 또한 시인은 자신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백성들의 행복과 공동 이익을
위해 세움을 받았다는 확신입니다. 이렇게 지금 시인의 관심은 자신의 행복 추구에 있지 않고
백성들의 행복한 미래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인을 통해 그 분의 은총과 계속적인
진행을 지금 우리 앞에 제시하고 계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보여준 것과 같이,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주위의 형제, 자매들에게 돌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이며,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돌아봐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고 시간을 내어 세워주고 위로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사십시다.
오늘의 (8/31) 말씀 묵상 (시편 27편8절, Psalms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My heart says of you, ‘Seek his face!’
‘Your face, LORD, I will seek.’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을
청종하고, 들은 것에 응답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 분을 전적으로 신뢰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내 얼굴을 찾으라’고 말씀하실 때,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라고
응답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겠다는 표현입니다. 또한 ‘내 얼굴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 분의 형상과 실체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간구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시인의 신앙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친백성이 된 우리들이 매일의
삶에서 실천해야 할 규범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올 때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8/30) 말씀 묵상 (시편 27편4절, Psalms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One thing I ask of the LORD, this is what I seek:
that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days of my life,
to gaze upon the beauty of the LORD and to seek him in his temple.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룹과
법궤가 있습니다. 기도자가 바라는 유일한 기도 제목은 평생 여호와의 집에 거하며, 아침에
태양을 보듯이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그의 전에서 제물을 톻애
여호와의 뜻을 묻고 찾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을 평생 소원으로 삼고 살겠다는 겁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환난 날에 그를 지키시고, 숨기시며,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그 분과 교제를 소원하며, 하나님의 응답과 인도를 간청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나님을
알도록 돕습니다.
우리는 세상이나 원수 앞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만큼 하나님을 사모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8/29) 말씀 묵상 (시편 27편1절, Psalms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The LORD is my light and my salvation–whom shall I fear?
The LORD is the stronghold of my life–of whom shall I be afraid?
시인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빛과 구원이 되시며, 생명의 능력이시기에 누구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의 능력이시기에 그의 대적, 원수 된
행악자가 해치려고 왔다가도 실족해서 넘어질 것이고 군대가 포위하고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유지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이런 확신이 어디에서 나왔을지 궁금합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그 분과 교제를 소원하며 하나님의 응답과 인도를 간청할 뿐
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나님을 바라도록 도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자에게는 아무리 극악한 세력이 밀려와도 그에게
두려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이심을
확신합니까? 의심치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십시다.
오늘의 (8/27) 말씀 묵상 (시편 23편5절, Psalms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여기서 ‘상’은 손님을 초대해서 같이 음식을 먹는 ‘식탁’입니다. 원수가 보는 앞에서 잔치를
열고 있는 광경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시인을 의로운 자로 판결하셨으므로 원수들에게서
승리할 수 있었고 그래서 축제를 열게 될 것을 확신한다는 의미입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왕의 대관식, 대제사장의 임명식뿐 아니라 귀한 손님에 대한
예우로서도 행해졌습니다. 기름을 바른 손님은 주인의 극진한 호의와 친절을 입었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시인을 놀라울 정도로 존귀하게 여기셨고 축복하셨다는 것으로, 시인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들로 만족하고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다는 고백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대로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다.
오늘의 (8/24) 말씀 묵상 (하박국 3장19절, Habakkuk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The Sovereign LORD id my strength; he makes my feet like the feet of a deer
he enables me to go on the heights.
For the director of music. On my stringed instruments.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리 삶에 힘을 제공해 줍니다. 하박국의 힘과 우리의 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주 여호와를 신뢰함으로 얻게 됩니다. 그러면 마치
사슴이 바위투성이 골짜기를 아무 탈 없이 안전하게 뛰어다니는 것처럼 선지자는
하나님 안에서 안전과 평안을 얻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환난과 역경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선지자가 이 노래를 수금으로 찬양하도록 지은 것은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오랫동안
전해진 관습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기도와 음악은 예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혜와 힘을 의지하여 인생을 살아가기 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8/23) 말씀 묵상 (하박국 3장17-18절, Habakkuk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t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선지자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피폐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농사를 망치고
가축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연약을 지키지 않을 때 닥치는
전형적인 저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과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리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기쁨은 여호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없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거기’ 계시고, 하나님이 계신 한에는 아직도
구원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이 친히 목격한 하나님의 임재가
결국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임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그 기쁨을 회복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선지자와 같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구원 하나 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습니까?
오늘의 (8/21) 말씀 묵상 (하박국 3장2절, Habakkuk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LORD, I have heard of your fame; I stand in awe of your deeds, O LORD.
Renew them in our day,
in our time make them known; in wrath remember mercy.
진정한 예배는 우리가 올바른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만 가능합니다. (요 4:23절 참조) 바른 예배를 드리려면
올바른 마음, 혹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박국은 경건한 놀라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여기
‘소문’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기사, 명성’으로도 설명될 뿐만 아니라, 원어적으로는 ‘증언, 기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선지자는 곧 남 유다의 시련과 바벨론 (현 이라크)의 멸먕에 관한 하나님의 기사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출애굽 기간에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성경의 기록들을 통하여 그 일들을
들었습니다. 그 일들을 생각하며,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시며, 나타내시옵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단지 듣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 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야겠다는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 분이 진노하시면
살아날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와 조국을 위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길 기도하십시다.
오늘의 (8/20)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 3장18절, 2 Peter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But grow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To him be glory both now and forever!. Amen.
비록 이 세상이 잠시 사단이 지배하는 죄악된 곳으로 변하였을지라도, 우리가 이 세상을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적인 지혜나 힘을 축적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안 덕분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지식이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영광을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관례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사도는 최종적으로 그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에
대한 송영이 곧 하나님께 대한 송영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영광이 영원한 날까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날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성도는 이 같은 태도로 주의 날을 기다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야 합니다. 복음에
근거한 건전한 지식으로 마지막 때까지 성결한 삶을 살아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