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일입니다 (9/15)
오늘은 추석을 앞둔 주일입니다.
어려운 중에서도 한 해 결실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려 은혜가 넘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9/14)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Revelation 2:7)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리라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To him who overcomes, I will grant to eat of the tree of milk
which is in the Paradise of God.
예수님께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 중 첫째인 에베소교회에게 주시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도 받았지만 처음 사랑을
버렸기에 책망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회고하고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행하면, 즉 영적으로 행음하도록
하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즉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지금도 말씀하시는 성령님을 듣고 따라가서 낙원에 들어가십시다.
오늘의 (9/13) 말씀 묵상 (야보고서/James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Submit therefore to God.
Resist the devil and he will flee from you.
사도 야고보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겸손함이 무엇인지 설명하는데
그것은 그분께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마귀를 대적하라고 명령합니다.
‘대적하라’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반대하여 서다, 대항하다’는 의미로
즉각적으로 하라는 긴급성과 엄중함을 나타냅니다.
마귀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고 믿음의 길을 지킬 때 마귀가 우리에게서 떠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세상으로부터는
멀어집니다.
마귀가 주는 육체적인 시험은 집요합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유혹합니다.
그럴 때 꼬리를 내리고 도망하거나 적당히 타협하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마 하나님을 의지하고 대항하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한 걸음 나아가면 그분은 우리에게 두 걸음 가까이 오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십시다.
오늘의 (9/12) 말씀 묵상 (누가복음/Luke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헤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Behold, I have given you authority to tread on serpents and scorpions,
and over all the power of the enemy,
and nothing will injure you.
70명의 제자들이 돌아와서 귀신들이 예수님의 이름에 항복했음을 보고한 후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예수님이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그들에게 주셨음을, 그러기에 그 승리는 당연함을 알려주십니다.
뱀은 사탄을 상징하고 ‘원수’ 또한 신약의 유대 문헌에서는 사탄을 가리키며
전갈 또한 같은 의미입니다.
제자들이 축귀 사역에 성공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 때문이지 자신들의
능력으로 된 줄 착각하지 말고 항상 그분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여 대적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승리와 기쁨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두려워하지도 말고 또한 교만하지도
말고 주신 권세를 믿고 당당하게 행하여 유혹과 핍박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십시다.
오늘의 (9/11) 말씀 묵상 (예레미야/Jeremiah 32: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Behold, I am the LORD, the God of all flesh;
is there anything too difficult for Me?”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 그들에게 닥칠 심판으로
인해 탄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예루살렘 도성이 바벨론
군대의 손에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밭을 사고 증인을 세우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이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고 밝히시면서 과연
자신에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는 질문으로 답변을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들이 망할 것이지만 자신이 어떻게 회복시키실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분으로 누구든 생명을 좌우할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누구든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생명과 평안을 주십니다.
혹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
오늘의 (9/10)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2 Corinthians 2: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For we are the fragrance of Christ to God
among those who are being saved and among those who are perishing;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합니다.
여기 사용된 단어는 일반 냄새와는 달리 항상 좋은 향기만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 선포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온 세상에 퍼뜨리는
사람인데 그 결과는 양면으로 나타납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 그 향기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이며, 구원받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냄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가 들어가는 곳에는 이런 양단간의 구별이
불가피합니다. 복음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기에 (영생 혹은 영벌)
아직도 그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그 향기를 뿌려야 하고
또한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항상 풍겨 나와야 합니다.
오늘의 (9/9)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1: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The integrity of the upright will guide them,
But the crookedness of the treacherous will destroy them.
저자는 ‘성실’과 ‘패역’을 대조하면서 성실은 인도자 역할을 하지만 신실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황패하게 한다고 합니다. 정직한 자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죄/무흠/순전함
이지만, 속이고 배신하는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왜곡/부정/사악함/이기에 그
길의 끝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눈앞의 즉각적인 이익을 위해 속이고
왜곡하는 짓을 서슴치 않습니다.
앞뒤 문맥을 보면 저자는 정직하게 돈을 벌라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빨리 벌기 위해 정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진노를 자초하는 것이니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아무리 빨리 빨리 가더라도 방향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됩니다. 신실하고 정직하게 가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9/8)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결실의 계절에
살아계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성삼위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고 새롭게 함으로
신령한 은혜를 받고 성령의 열매를 더 풍성히 맺어가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9/7)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Galatians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For the flesh sets it desire against the Spirit,
and the Spirit against the flesh.;
for these are in opposition to one another,
so that you may not do the things that you please.
율법의 멍에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자유롭게 된 성도들에게 바울은
그 자유를 육체의 정욕을 이루는 기회로 삼지 말고 오히려 사랑의 종이 되라고
하는데 금방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갈등하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그런 육체의 약함을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으려면 성령님을 따라 살면 됩니다.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육체의 욕심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 때문에
갈등하게 되는데 이 갈등을 넘어서려면 순종 곧 충만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성령의 충만을 구하고 받아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삶을 사십시다.
오늘의 (9/6)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A joyful heart make a cheerful face,
But when the heart is sad, the spirit is broken.
저자는 마음과 삶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구약에서 ‘마음’은 삶의 방식과 행동을
결정하는 기관으로, 모든 판단과 삶의 근원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겉으로 표출이 되어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 그런
사람은 콧노래를 부르고 쉽게 말을 건내고 웃고 긍정적입니다.
반면 마음의 근심은 영혼을 무너지게 합니다. 얼굴이 어둡고 말 수가 없고 부정적이고
대인관계도 피하게 됩니다. 결국 마음의 평안이 내적/외적 삶을 좌우함을 알려줍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지혜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기에
그분 앞에서 선을 행하며 의의 길을 선택하고 행함으로 즐겁고 평안한
마음을 누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