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4) 말씀 묵상 (신명기 11장12절, Deuteronomy 11: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It is a land the LORD your God cares for;
the eyes of the LORD your God are continually on it from the beginning of the year to its end.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돌보심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가나안 땅은 자연적으로 풍요로운 땅이며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땅입니다. 모세가 확신에 차서 선포하는 이 기쁜 소식은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눈’이란 가나안 땅과 또한 그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항상 고정되어
있는 그분의 지극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보살핌과 같은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인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돌아보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삶 모든 영역에 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면,
우리는 그분의 은총 가운데 평안과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니
딴 것에 눈을 돌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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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3) 말씀 묵상 (신명기 8장2절, Deuteronomy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Remember how the LORD your God led you all the way in the desert these forty years,
to humble you and to test you in order to know what was in your heart,
whether or not you would keep his commands.
하나님은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혹독하게 훈련시키셨습니다. 광야 생활은 하나님을 불신한 대가로
받는 형벌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비록 불순종했지만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선택한 민족이 계속해서 잘못된 길로 나아갔지만,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끝까지
훈련시키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인간을 새롭게 빚으시고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심하든지 믿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훈련하십니다. 광야생활은
선민으로서 바른 삶을 살고 겸손하도록 하기 위한 연단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맛보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사랑하는 자녀를 그분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연단 중에 있을 때, 비록
그것이 힘들지만 감사함으로 받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은 결고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고난 가운데 함께
계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겨내고 연단되어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릇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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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 말씀 묵상 (신명기 8장16절, Deuteronomy 8: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He gave you manna to eat in the desert, something your fathers had never known,
to humble and to test you so that in the end it might go well with you.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기간인 40년 동안 그들을 광야에서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이는
먹을 것이 전혀 없던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살리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건이었으므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크기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에 도달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먹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책임지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자녀 삼으신 이후 우리의 삶 전 영역을 책임지시고 결국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에 안착시키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런 무궁한 사랑을 늘 마음에 새기며, 그분에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충성은 그 분의 말씀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벡성에게 경험하게 하신 모든 어려움은 장차
큰 복을 주시기 위해서 행하신 교육이었습니다. 교육을 통해서 겸손케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사실을 기억하고 교만하게 자신을 내세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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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 말씀묵상 (신명기 7장7절, Deuteronomy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The LORD did not set his affection on you and choose you
because you were more numerous than other peoples,
for you were the fewest of all peoples.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삼으신 이유는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뛰어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반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그가 이스라엘의 정체를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만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그들로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이스라엘이 선민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은총이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고 철저히 우상을 배격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거부하기 어려운 달콤한 유혹이 우리를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우리의 삶은 세속의 늪 속에 발을 디디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잠시 만족을 주고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를 안전히 보호하시며 지켜 주사
마지막 때까지 믿음을 지켜 구원을 완성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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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31) 말씀 묵상 (마태복음 10장38절, Matthew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
Whoever does not take up their cross and follow me is not worthy of me.
우리 대장 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에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은 제 각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 자가 진정한 제자이기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자신에게 지워진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몫을 담당하지 않으려는, 제자가 아닌 자를 의미합니다. 이를 전제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시 십자가의 사형수는 처형장까지 자기가 매달려야 할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어 있었고,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단순히 생활의 어려움이나 육체적인 아픔 만을 의미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위해 헌신함으로
파생되는 온 인격적인 고충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려고 하는 제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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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30) 말씀 묵상 (마태복음 7장7절, Matthew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이 말씀에 나오는 세 가지 동사,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모두 명령형입니다. 모두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권면입니다. 원문에는 모두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있어, 동작의 반복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한 가지 사실의 점증적인
표현들로 히브리 시의 ‘오름 뜻 줄 맞추기’에 행당합니다. 이는 기도를 거듭할 수 있는 열정을 권면하는 표현입니다.
‘주실 것이요’ ‘만날 것이요’ ‘열릴 것이니’는 기도의 대가를 보장하는 말씀입니다. 구하는 동사를 세 번이나 사용하고
보장하는 동사를 세 번이나 사용한 것은 기도의 응답의 확실성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먼저 마음속의 기원을 구하고,
그 다음은 소원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며,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방법 및 간구하는 자의 태도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기도할 때 최선을 다해서 간구하라는 일종의 기도 명령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장 큰 특권임과 동시에 의무이기도 합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기도해야 얻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구하기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와 조국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를 살리는 기도를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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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9)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27절, Matthew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Who of you by worrying can add a single hour o his life?
염려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불필요함’입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염려는 오히려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유해함’입니다. ‘염려’라는 단어의 헬라어 뜻은 ‘분열됨’입니다. 염려는 마음을 나뉘게 하고 분열시킵니다.
그래서 마음을 찢습니다. 아프게 만듭니다. 개인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해칩니다.
염려의 세 번째 특징은 ‘전염성’입니다. 염려와 걱정은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전염이 됩니다. 그래서 결국 공동체를 깨뜨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염려는 하나도 이로울 게 없습니다.
우리는 이방인들처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며 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지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십니다. 염려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분의 때에 그 분의 방법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하는 것 대신 그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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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8)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24절, Matthew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예수님은 의인법을 사용해 재물을 하나의 우상응로 인격화시킵니다. 한 사람이 두 말에 오를 수 없으며
한 사람이 두 활을 동시에 당길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종이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으며, 하나를
중히 여기면 다른 하나를 경히 여기지 않을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온전항
충성뿐입니다. 반쪽짜리 충성이란 있을 수 없고, 여기에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 나오는 단어 ‘재물’은 (Mammonas) 물질적 소유 또한 돈을 가리키는 아람어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재물
신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한편을 사랑하면 다른 한편은 미워해야 합니다. 거기에 중간은 있을 수 없고
사람의 본성도 중간쯤으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땅 위에 보물을 쌓는 자는 하나님께 대해 부요치 못하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는 재물 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신앙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서에 나오는 젊은 부자 관원 같이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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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7)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15절, Matthew 6:15)
그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But if you do not forgive men their sins,
your Father will not forgive your sins.
사람들은 참 용서에 인색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하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죄가 없으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대신 죽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그 분이 하신 것을 믿으면 죄값을 용서받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죄에 대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용서받았기에 마땅히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도 용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잘못도 용서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요즘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자신이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인정사정 없이 비판하고, 집요하게 과거를 캐내서 잡아가두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의 큰 죄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덮거나 온갖 변명을 늘어놓고 미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공정하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런 것이
정의사회 구현입니까? 그런 곳에 화해와 평화가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가 용서받은 자임을 알고 용서하는 삶을 살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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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6) 말씀 묵상 (마태복음 4장4절, Matthew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Jesus answered, ‘It is written;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comes from the mouth of God.’
예수님은 신명기 8:3절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를 양식으로 해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주리신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본적인 삶의 원칙을
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40일을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즉 떡이나 세상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최고로 아는 자라야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사람이 떡을 먹어야
살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물질을 최우선순위에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첫째 시험에서 무사히
하나님의 아들로 검증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자주 받는 유혹은 무엇입니까? 영적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취약한 부분이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는데 우리라고 예외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약함을 알고 방어할 때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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