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2)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3장17절, 2 Corinthians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in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모든 예언을 다 이루시고 이 땅에 구원의 길을 열으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얻는다고 믿고 예수님을 메시아 즉 그들이 기다렸던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선한 윫법을 지키며 거룩하거 경건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중ㅇ합니다.  문제는 그 선한 율법을 사람이 다 지킬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죄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책감만 더 커지게 됩니다.  만약 율법을 지키고 구원을 얻는데 문제가 없다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그런 유대인들의 모습이 바로 모세가 그 얼굴의 광채를 가리우려고 얼굴를 수건으로 가림으로 그 영과으이 광채를 보지 못하게 한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향유하고 누리는 자들의 특권은 율법 가운데 사는 자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습니다.  율법 가운데 사는 자들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율법을 의무적으로 행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유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 분께로 돌아가면 얼굴에 덮혀있던 수건이 벗겨질 때가 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자유함으로 인해 복음을 믿는 자들은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보다 훨씬 더 복 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을 나누신 것은 그 당시 모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영’으로서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얼굴에 쓰고 있던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을 보는 것처럼 명확하게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은총이 영원한 주의 영 가운데 완성되어질 때까지 이 자유함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자유함을 누리며, 주님을 더 닮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