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5/16) 말씀 묵상 (역대하 20장12절, 2 Chronicles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Oh our God, will you not judge them?
For  we have no power to face this vast army that is attacking us.
We do not know what to do, but our eyes are upon you.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유다를 쳐들어왔을 때 여호사밧 왕은 금식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여호사밧 왕의 태도를 보시고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이 전쟁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15절) 그 말은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이기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있겠습니까!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께 구한 것을 보면서 기도하는 자가 어떤 자여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것은 바른 삶을 사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당당한 호소였습니다.  만약 그가 비록 왕이지만 바른 삶을 살지 못했더라면 하나님께 당당히 구원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여호사밧 왕처럼 승리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담대하게 하나님꼐 호소하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며, 바른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도 야고보가 선포했던 것처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 간구하지 전에 먼저 바른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서 특권이요 기쁨이요 또한 의무입니다.  기도와 간구를 통해 우리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며,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승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가
승리케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삶이 기도 응답의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고 그 결과 우리는 항상 승리할 것입니다.  그렇게 바른 삶을 살아가며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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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5)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6장6절, Galatians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Anyone who receives instruction in the word
must share all good things with his instructor.
 
사도 바울은 성령을 좇아 사는 삶을 실제적인 견지에서 금전의 사용에 대해 적용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듯이, 그런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명령을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역자들은 신앙과 생활의 규범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항상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말씀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자들이 가르침을
받는 자들에게 영적인 것으로 뿌리는 동안,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육신의 것을 거두는 것이 서로 공정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원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10:10)  이렇게 볼 때 주의 종을 대접하는 것은 합당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를 물질적으로 궁핍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가르침을 받는 자가 마땅히 취할 예의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가르치는 자는 자신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기에 가르칩을 받는 자들에게도 유익합니다.  만일 교역자가 굶고 있는 것을 보고도 이를 방관한다면 그 교회는 결코 건강한
교회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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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4) 말씀 묵상 (요한복음 6장27절, John 6:28)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Do not work for food that spoils, but for food that endures to eternal life,
which the Son of Man will give you.  On him God the Father has placed his seal of approval.
 
예수님께서는 찾아온 무리들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여기서 ‘썩는 양식’이란 영원하지 않으며 쇄해지는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행하셨습니다.  영생하는 양식을 얻으려면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놀랍고 위대한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발견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새롭고 놀라운 일들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적인 민감성을 키워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넘어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믿음과 사랑을 성장시켜 주는
하나님의 계획이 될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가 언급했던 썩어져 없어질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우리의 인생이 이 땅의 것에 매이게 됩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과는 자연적으로 멀어집니다.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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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3) 말씀 묵상 (역대상 29장12절, 1 Chronicles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Wealth and honor come from you; you are the ruler of all things.
In your hands are strength and power to exalt and give strength to all.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조상들을 보호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조상들에게 베푸신 것처럼, 지금도 당신의
백성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윗은 그렇게 완전성을 지니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가 찬양하고 있는
하나님은 모든 것의 정당한 소유자로서 최고의 통치권자이십니다.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이며,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 으뜸으로서, 부와 명예가 모두 그 분께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또 그 분은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만유를 움직이시며 감화시키십니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누린 풍요와 영광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꼐 보답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에 지니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윗은 그 놀라우신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그 분의 주권과 능력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경우, 찬양의 대상을 바르게 알 뿐만 아니라 왜 그 분을 찬양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깨달을 때에만 진정한 찬양을 드리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찬양을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십니까?  혹시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노력과 땀으로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화자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교만이요 착각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존귀한 분으로 여기고
경외하는 자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지만 그렇지 않고 교만한 자는 멀리 하십니다.  모든 것을 거두어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 
전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고 찬양을 올려드시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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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2) 말씀 묵상 (시편 24편8절, Psalms 24: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Who is the King of glory?  
The Lord strong and mighty, the Lord mighty in battle.
 
시인은 바로 앞 구절에서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신다’고 읊었습니다.  영광의 왕,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께서 행차하셨으니 문을 열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문을 의인화해서 말합니다.  문들에게
영광의 왕이 들어오시는 것을 기뻐 반기며 그케 그 입을 열어 환영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요구에 대해 성전 문을 지키는
자들이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시뇨?’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에 ‘강하고 능한 여호와,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다’라는 답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구원과 통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 안에 들어오시길 원하십니다.  그 전능하신 영광의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 중심에 좌정하여 계실 때, 성도는 세상의 온갖 환난과 역경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감히 그 분을 대적하고
이길 자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사탄이 강하다고 하지만 그 역시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잠시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내버려 두시고 계실 뿐입니다.
 
성도는 입으로만 주님을 ‘주인’ 또는 ‘왕’으로 인정할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주님의 전적인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시간과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어디든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을 받으면 그 때부터
그곳이 어디든 천국은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냥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면, 그 분이 우리 삶 중심에 오셔서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통치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분께서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시도록 주권을 내어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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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1) 말씀 묵상 (로마서 5장8절, Romans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세상 사람들은 상대의 모습에 따라 사랑을 베풉니다.  상대방이 잘 생겼거나 세상적인 지위가 높거나 가진 것이 많으면
일단 사랑을 쉽게 베풉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되면 쉽게 관계를 정리합니다.  이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의 조건에 상관없이 포용하고 받아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을 때,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죄의 대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놀라운 사랑입니다.  이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할 사랑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인이 영생을 
얻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라도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 놀라운 구원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무리 상황과 환경이 어려워도 믿음의 사람은 오직 한 가지 구원을 얻은 
것으로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가 고백했던 말씅이기도 합니다. (합 3:17-18)
 
혹시 오늘이나 근래에 근심이나 낙심되는 일이 있습니까?  억울한 일이 있습니까?  그래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기에 기뻐하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런 기쁨을 보이지 못한다면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의 은총을 누리며 기쁘게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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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0) 말씀 묵상 (이사야 40장7-8절, Isaiah 40:7-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리라.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s fall, because the breath of the Lord blows on them.
Surely the people are grass.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s fall, but the word of our God stands forever.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의 육체와 그 아름다움이 소멸하게 되는 원인을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자신의 미모와 재능으로 수많은 영광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스치고 지나가면 풀처럼
곧 시들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힘과 재능만 
믿고 교만해져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택함
받은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지자는 인간의 육체와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하여 설명하기를, 인간의 육체는 풀과 같이 마르고 꽃과 같이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선언합니다.  후에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썩지 아니할 씨로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소멸해 버리는 다른 모든 유기체와는 달리 영원히 존재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은 일점 일획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마 5:18)
그러므로 영생을 원하는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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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9) 말씀 묵상 (골로새서 2장16절, Colosians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Therefore do not let anyone judge you by what you ear or drink,
or with regard to a religious festival, a New Moon celebration or a Sabbath day.
 
이 구절은 이단적 가르침을 다르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보족하기 때문에 모세의 할례와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의 규례들도 지키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믿는 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율법적인 형식이나 행위들은 그림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을 통해서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진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무관한 종교적인 규례를 따르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도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제도와 관습과 전통에 분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서 그 분의 그림자와 같은 규례를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위를
살펴 주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진 모습이 있다면 주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본질이 아닌 것이라 비본질적인 것이라면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가 되어야 할 공동체가 분열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공동체를 이간질 시키려는 사탄의 계략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분별하고 본질이 아닌 것은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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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8) 말씀 묵상 (신명기 5장16절, Deuteronomy 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as the Lord your God has commanded you,
so that you may live long and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in the land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10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계명은 하나님께 관한 계명이고
5-10계명은 사람들 사이에 관한 계명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관한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는 곧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은 외적인 표현이나
행위들뿐만 아니라 내적인 존경까지도 포함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자기들에게 가르친 선한 예법들을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정당성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또한 자연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외적인 번영과 장수가 계명을 잘 지키는 자들에게 약속되어진 축복입니다.  순종하는 자녀들은 종종 외적인
축복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 5계명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도
말합니다.  복음은 영적인 약속 뿐만 아니라 현세적인 약속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된 보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는 동기가 되고, 또한 격려가 되기도 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일은 어린이날, 그리고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더 부모님께
대한 효를 강조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입니다.  눈에 보이는 아버지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도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은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부모님을 공경하여 약속을 장수와 형통의 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진정한 믿음의 자녀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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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7) 말씀 묵상 (욥기 10장12절, Job 10: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You gave me life and showed me kindness,
and in your providence watched ever my spirit.
 
성경에서 고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욥입니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육체뿐만 아니라 생명과 은혜를 주시고 또한 자신을
보살피스므로 영을 지켜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비록 이해가 되지 않는 어려움과 고통이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어도, 그는 하나님의 알 수 없는 은총과 섭리 그리고
보살핌응로 말미암아 그의 생명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으며, 평화와 번영을 맛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사람에게만 영을 주시고, 자신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다가 보면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억울한 상황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라도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과 그리고 알 수 없는 섭리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고난을 허락하시는 분도 주님이시요, 그 환난에서 건지실 수 있는 분도 주님이시요, 그것을 이기고 견딜 수 있도록 인내와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심을 기억하고 그 분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믿음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그 분께서 주시는 고난도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그 환난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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